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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마누엘 신앙을 회복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7. 1. 23. 00:00

    주현 후 3주(2017년 1월 22일)

    이사야 7장 10-16절

     

    임마누엘 신앙을 회복하라.

     

    가. 표징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표징을 주실 것이라. 보라 한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14절).

     

    본문은 북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군사적 위협 앞에 서있던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차례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들은 타다만 부지깽이 같으니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까지 하셨습니다(4절).

     

    하나님은 아하스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신뢰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연합군을 물리칠 수 있는 강대국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도 아하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친히 징조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징조(오트)는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라고 주시는 은혜요 기회입니다. 징조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여러 가지 이적(σημειον)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양식을 가리키는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온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표징입니다. 우리 성도는 표징이 가리키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표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 불신은 큰 죄악다.

    {그러나 아하스가 대답했다. “내가 무슨 요구를 하리요? 나는 결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을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깊은 데에 있는 것이라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라도 그 어떤 표징이라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11절). 아하스는 주저없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슨 요구를 하리요? 나는 결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표징 같은 것을 구하지 않겠다는 말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제는 큰 불신의 대답이었습니다.

     

    아하스의 마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애초부터 자리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의 왕(Tiglath Pileser 3세)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편이 살 길이라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퍅한 아하스를 찾아가 징조를 구하라고까지 하며 설득하였으나 끝내 왕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아하스는 불신앙의 대답 뿐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속이는 이런 행위를 경고하였습니다(갈6:7). 아하스처럼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하나님 따위는 필요없다고 하는 불신과 교만은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 임마누엘 신앙을 회복하라.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표징을 주실 것이라. 보라 한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 이 아이가 커서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면 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라}(14-15절).

     

    하나님의 관점은 아하스의 불신의 뿌리를 유다의 왕가로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더 이상 속이지 말고 하나님의 인내도 시험하지 말라고 전하였습니다(13절).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불신에도 불구하고 친히 표징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징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이라 이름하는 한 아이가 표징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다음 구절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아이가 커서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면 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라.”

     

    본문의 임마누엘 표징은 우리에게 임마누엘 신앙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신앙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때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선악과를 취하는 잘못된 길을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 신앙의 회복이 살 길입니다.

     

    라. 임마누엘 신앙이 구원을 이룬다.

    {이는 그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두려워하는 두 왕이 땅에서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16절).

     

    15절과 16절은 “아이가 커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면”이라는 동일한 구절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알다’(야다)이지만 15절은 칼형, 16절은 미완료입니다. 그렇다면 문맥상 16절이 먼저와도 상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표현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5절이 목표라면 16절은 과정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선악을 분별하는 완전, 거룩에 이르는 것입니다. 부름 받은 자는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목표에 도달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 신앙으로 달려가는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는 아하스의 불신앙을 타산지석 삼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도 물 위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처음에는 물 위를 조금 걸었지만 이내 무서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원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였습니다(마14장). 의심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구원의 은혜를 얻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여러 표징과 은혜를 통해 베푸시는 깊은 뜻을 깨닫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 신앙의 길에서 구원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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