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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술의 경건과 마음의 경건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9. 13. 17:05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20080907]

     

    입술의 경건과 마음의 경건(욥 42:1-6)

     

    인생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전 8:7에는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라고 그랬습니다. 인생이 내 생각대로, 내 각본대로 연출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일이 진행된다고 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궁극적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입니다.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는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영적 분별력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믿기지 않는 자신의 죽음 선고라든지, 배우자나 주변 인물들의 죽음과 같은 갑작스럽게 당한 충격, 여러 가지 상활 속에서의 정신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난 등을 당하면, 일반적으로 고립-분노-타협-절망-수용 등의 다섯 가지의 심리적 상황을 들어냅니다. 이러한 심리적 과정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이야기 했는데, 여기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겠습니다.

     

    1) 고립

    먼저 고립이라는 단계입니다. 사람이 생각지 않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거나,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는 고통을 당하게 되면 맨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고립인데, 이러한 심리적 상태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싫어지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가기 싫어지게 됩니다.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거나 나의 고통을 물어보는 것도 싫고, 내 상황을 남에게 말하는 것도 싫어집니다. 이러한 고립 속에서 나는 왜 이럴까하는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2) 분노

    고난과 고통 속에서 나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동안 경외하고 순종하던 하나님을 분노와 원망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나는 하나님 믿는데, 하나님! 왜 이리 불공평합니까? 나쁜 일하지 않고, 남에게 해 준 일도 없는데,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나에게 주십니까? 나는 정직하게 살았는데, 하나님! 왜 이런 아픔을 나에게 주십니까?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렇게 하나님께 원망도 해보다가 아무런 응답이 없는 하나님을 발견하고는 “교회에서 들은 하나님과 현실의 하나님은 다르구나!”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교회에서 하는 말이 더 이상 믿겨지지 않고, 교회와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이기만 합니다.

     

    3) 타협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다시 한 번 매달려 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건져달라고 기도합니다. 애원한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들어주시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번 한번만 나를 살려주시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으니, 나를 살려달라는 것은 마치 하나님과의 타협이나 거래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타협해 보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고, 예고된 죽음의 시간은 다가 오고, 고통과 질병은 약화되기는 커녕 더해가기만 한다면 인간은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기서 낙심하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나의 고통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하나님을 이제는 외면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절망

    네 번째 심리적 단계가 절망입니다. 우리가 고통과 절망 중에 빠져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지배하신다는 데, 정말로 그런가?” 인간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면 하나님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갑자기 머리 아픈 일로 여겨지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기라도 하면 다 못 마땅해집니다.

     

    5) 수용

    마지막 단계가 수용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죽음의 시간을 막을 수 없음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다른 사람이 대신 고통당할 수도 없는 일인데,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상황을 자신이 감당할 몫으로 수용해 버립니다.”

     

    이러한 단계들은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또는 충격적인 사고를 당한 후, 혹은 자신이나 가족들의 갑작스런 불행 앞에서 겪게 되는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 현상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욥이라는 인물에게도 이러한 심리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욥기의 저자는 욥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고난 중에 있는 인생의 문제를 논하면서 그런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바른 태도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고난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는 욥과 같은 처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기 1장과 2장은 욥기 전체의 서곡으로 6개의 장면을 가지고 있는데, 1장 1절에서 5절은 욥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의 경건성과 가정의 행복을, 6절에서 12절은 욥의 경건성을 시험하기로 한 결정, 13절에서 22절은 욥의 소유와 자녀들의 손실을 통한 시험, 2장 1절에서 6절은 두 번째 시험, 7절에서 10절은 욥의 발병을 통한 시험, 11절에서 13절은 욥의 세 친구인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방문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 37장까지 욥기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욥의 대화가 차지합니다. 그 후 38장에 와서야 하나님은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42장은 욥기의 결론 부분으로 욥의 고백과 회개 후 하나님이 다시 그를 회복시키시는 해피엔딩 부분입니다.

     

    한 인생에게 예고도 없이 다가온 고통 앞에 고통의 당사자인 욥도 처음에는 고립됩니다. 그러나 욥의 고립은 스스로 택한 고립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서 당하는 고립입니다. 재산은 사라지고, 자녀는 죽고, 남은 종들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 주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몫을 챙겨 도망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욥의 부인도 남편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퍼붓습니다. 욥기 2장 9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욥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과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욥의 어떠한 모습이 그런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말의 경건

    욥의 삶을 통해 발견되는 욥의 위대함은 말의 경건성에 있습니다. 사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다름없습니다. 혀의 절제함 없는 경건은 헛것이라고 야고보서에서는 말씀합니다.

     

    욥은 자신이 경험하는 생각지 못한 비참한 고난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출생을 원망할뿐입니다.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욥기 9장 32절에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 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도 없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기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슬픈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 이하에,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고백을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나의 형편을 보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 마음의 경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욥의 마음이 변함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조성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 그것을 마음의 경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잠언 4장23절,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그 마음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성, 지성, 의지를 다 보고 계시는 분이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 뿐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이 말씀을 다르게 말하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생명 자체를 흔드는 것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다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욥의 위대함은 어떠한 고난, 어떠한 친구들의 말에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욥이 보여준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보고 그 사람을 쓰십니다. 인간의 마음의 움직임과 결심들을 하나님은 전권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계획에 쓸모 있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생각을 하면 우리를 선하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우리의 질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질문에 인간이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있습니다. 인간들의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문에 인간들이 대답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 너는 누구인가?,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등에 인간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 홀로 있는 욥에게도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수많은 질문을 합니다. 욥기 38장 2절에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8장 4절,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40장 8절-9절,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약하다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

     

    아무런 말도 못하던 욥은 드디어 대답합니다. 42장 2절,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42장 5절,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이전까지 귀로만 듣고 알았던 하나님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게 된 욥의 고백입니다.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체험으로 깨닫는 욥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고백이요, 다시 태어남의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우리가 예수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씀이 우리 안에 경험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욥의 위대함은 어떠한 고난, 어떠한 친구들의 말에도 입술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을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말의 경건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의 입술과 나의 마음을 지켜 하나님과 나와의 생명의 관계를 유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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