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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답게 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7. 14. 23:11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2014년 7월 13일)

    창세기 25장 27-34절

     

    자녀답게 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경솔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29-30, 34절).

     

    에서와 야곱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입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몸이 붉고 털이 많아 에서라고 이름 하였고, 뒤에 나온 아이는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야곱이라 하였습니다. 이 둘의 어린 시절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상반된 기질과 모습으로 성장하였습니다(27절).

     

    어느 날 에서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들판에서 돌아왔습니다. 때마침 야곱이 죽을 요리하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그 붉은 죽 좀 나로 실컷 먹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30절). 야곱은 그냥은 못주겠다고 하고는 장자권과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배고픔 앞에서 그만 장자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본문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겨 죽 한 그릇을 대가로 바꾸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에서의 행동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볍게 여기다’는 ‘바짜’인데, 매우 가치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쓰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중동 사회의 장자권이 오늘의 신앙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장자권은 가문에 가장이 되고, 재산도 다른 형제에 비해 많이 받게 되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장자권을 영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 예수 믿고 천국 가는 내세의 복으로만 말하는데 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장자권(상속권)은 실제 장자로서 누리는 권리와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지위였습니다. 따라서 장자권을 이 시대의 신앙의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자녀답게 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장자권을 경솔히 여겨 팔아버린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그 귀한 신분을 빼앗기지 말고 잘 지키라는 경고의 음성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나. 자녀 됨의 신분은 부지불식간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30-33절).

     

    우리는 본문에서 에서와 야곱의 심정을 좀 더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둘과의 대화를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거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는 지치고 허기진 나머지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붉은 죽 좀 달라는데 야곱이 장자권과 거래하자고 하자 순간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반면 야곱은 심각합니다. 그냥 대접할 수도 있었을텐데 자기에게 형라고 부르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몇 초 차이로 자신이 동생이어야 하는 운명에 늘 불만이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시 말해 에서는 ‘그래 그래 네가 형해라’ 하면서 배고픔 앞에서 장난처럼 장자권을 주었고, 야곱은 이 거래를 확실히 하고자 ‘그러면 장자권을 주겠다고 맹세하라’고까지 한 것입니다. 나중에 에서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축복을 하겠다고 했는데, 야곱이 먼저 축복을 받자 야곱이 자신을 두 번이나 속였다고 억울해 했습니다(창27:36).

     

    에서와 야곱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에서는 속였다고 생각했고, 야곱은 정당거래를 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본문이 에서의 억울함을 이해하라는 것도 아니고, 야곱처럼 장자권을 뺏으라는 뜻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에서와 같이, 빼앗겨서는 안 될 것을 빼앗기지 말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2).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속이는 자가 와서 빼앗으려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서는 순간적인 육신의 욕구 앞에서 귀한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억울해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자녀 된 신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음대로 살면서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물질로, 명예로, 정욕으로 다가와 자녀 된 신분을 버리라고 유혹합니다.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회개할 기회조차 없어지게 됩니다(히12:17).

     

    다. 자녀답게 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32절).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실제 장자답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26장에 보면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창26:34-35).

     

    헷 족속은 해양민족이고 철기문화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미인들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서가 미인을 취하려고 헷 족속 여인과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에서는 부모의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장자로서 권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자는 그만한 의무도 주어졌는데, 에서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벧후3:11-12).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면서 천국을 소망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자녀답게 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삶이 축복입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34절).

     

    오늘의 한국교회의 교인들을 보면 에서처럼 장난하듯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식과 감투만 남고 삶은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취할 생각은 안하고 악도 섞어가며 재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살전5:21-22). 구원은 곧 거룩함이라는 진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배고픔과 자녀의 신분을 바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일 한번 지킨 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때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웃기는 농담조라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소욕대로 살면서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고 장난처럼 말해서도 안됩니다. 남들이 다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니까 이게 뭐 대수냐고 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일이 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팔아버리는 망령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삶이 축복입니다. 거룩함을 따를 때 주님을 본다고 하였습니다(히12:14). 성경은 천국 가서 거룩을 연습하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사는 자가 천국을 누리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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