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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결함을 유지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7. 8. 20. 11:00

    성령강림후 11주(2017년 8월 20)

    스가랴 3장 1-5절

    정결함을 유지하라.

     

    가. 성도는 은혜로 택함 받았다.

    {여호와께서 사탄을 꾸짖으시기를 “사탄아 예루살렘을 택한 나 여호와가 책망하노니,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 아니냐?”}(2절).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시며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사탄은 여호와의 천사 오른편에 서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신을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사탄아, 네가 보기에 죄 덩어리이고 형편없어 보여도 나에겐 소중한 자녀다”라는 변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불순종으로 저주 받은 아담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창3:21).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우리가 구원 받음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며 결코 우리가 잘난 것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엡2:9). 우리 성도들은 구원 받을만한 어떤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 믿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

    {여호와께서 (환상을) 보여주셨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있고 사탄은 그의 우편에 서있어 그를 고발하였다}(1절).

    스가랴가 본 환상에서 사탄은 여호수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 재건을 꿈꾸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사탄은 성전 건축을 대적하는 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환상을 통해 사탄이 이것으로 참소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3절).

    사탄이라는 말이 ‘비방하는 자, 정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탄의 실체가 욥기에서도 나타납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고소하면서 “주의 손으로 그의 소유물을 치시면 틀림없이 주를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비난했습니다(욥1장).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세상의 터무니없는 비난에 결코 낙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고 하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롬8장). 우리 성도들은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비난한다 해도 여기에 기죽거나 낙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때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서 있던 자들에게 그 불결한 옷을 벗기라고 명하시고 이어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의 죄악을 용서하였으니 너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말씀하셨다. 이에 내가(스가랴) 말하기를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였더니 그들이 여호수아의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우면서 옷을 입히고 있었다}(4-5절).

    환상에서 하나님은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여기에 택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화려하게 나타납니다.

    본문의 ‘죄악을 제거하다’에서 ‘제거하다’(아바르, 완료)는 ‘용서하다, 넘어가게 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죄악을 완전히 정결케 하셨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정결한 관을 씌우도록 하셨고, 옷을 입히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씌우다’(숨), ‘입히다’(라바쉬)는 모두 미완료형이라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해 주시지만 정결함을 유지하는 몫은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주시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주고받는 소유 개념이 아니라 관계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받은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 부분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은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자녀는 자녀다워지기 위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본분이 있습니다.

     

    라. 정결한 자는 보호받는다.

    {그들이 여호수아의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우면서 옷을 입히고 있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곁에 서 있었다}(5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칭의의 은혜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칭의 은혜뿐 아니라 정결함의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정결함을 지켜나가야 하는 몫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고 종들에게 명했습니다(눅15:22). 이는 칭의의 은혜입니다. 계시록에서 어린 양의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라고 하였습니다(계19:8). 이는 거룩함을 유지함으로 얻은 성화의 은혜입니다.

    사실 정결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여정에서 방심하다 넘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의 실패를 회상하면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고전10:12). 정결함을 유지하는 일은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물리치셨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았습니다(마4:11). 우리도 비록 광야 길이 힘들지만 끝까지 정결함을 유지하면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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