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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4. 2. 02:33

     

    종려주일[20120401]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왕하 22:1-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억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 역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지만 자신의 몸이 희생제물이 되는 운명의 때를 앞둔 비통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번 한 주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 속에 전해주시는 메시지들을 마음 깊이 되새겨야 할 줄 믿습니다. 자신의 영광, 자신의 유익은 조금도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길을 가신 예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행해야 할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를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결국 그 열매를 먹고 맙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죽었습니까?

    사실 창세기의 말씀은 처음부터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읽고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는 창세기 1~3장의 해석이 계속해서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창세기 1~3장의 올바른 이해는 성경의 바른 해석에 있어 필수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3장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냐가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했다고 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자마자 두 가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잎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자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어디있느냐?”라고 아담을 불렀을 때(창 3:9), 아담의 대답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분명 벗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벗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먹고 난 후에도 죽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가 두려워 숨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의 이 사건에서 두 가지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용서하듯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 곧 인간의 죄를 응당한 대가로 갚지 않으시고 너그러이 용서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 창세기 3장은 하나님이 인간의 범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죄를 지은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감히 설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내가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의 임재가 무서워졌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생각해 봅니다. 본문은 요시야 왕 때 성전에서 율법책 곧 토라를 발견하는 사건이 있었고, 왕은 토라의 말씀을 들을 때에 크게 회개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그리고 요시야가 토라를 듣고 취한 행동 속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이 시간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예루살렘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한 도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마음이 향한 곳, 하나님의 보좌로 택한 자리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3-14)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서도 이 땅을 일컫기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겔 43:7) 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처소를 운명적으로 미리 정해 놓으신 땅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뜻은 ‘천국에서 내려오는 평화’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평화가 깃든 자리가 아닌 우상숭배가 창궐한 가증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는 아몬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열왕기하 21장 20절에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지 2년도 안돼서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시야는 아몬 왕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은 후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지만 그의 나이가 팔세였다고 말합니다.(왕하 22:1)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왕권을 갖고 통치할 나이가 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장로들로 구성된 추밀원의 자문을 받으며, 어머니 여디다가 실권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왕기 사가가 요시야 왕을 평가하기를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북 왕조로 분열되는데,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통틀어 사가로부터 좋게 평가받는 왕은 드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요시야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왕일뿐더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 왕이라는 유일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요시야의 행적을 통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아니한 삶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러한 길을 걸어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복된 인생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의 사건은 요시야가 왕위 열여덟째 해 그러니까 그의 나이 25세 때에 서기관 사반을 시켜 성전 수리를 지시하며 시작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보수하면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이 율법책을 사반이 받아 요시야 왕 앞에서 읽게 되는데(아마도 신명기 12장~26장), 요시야가 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왕이 옷을 찢었다는 것은 비통하게 회개하였음을 말합니다. 왕이 옷을 찢었으니 함께 있던 신하들도 다 옷을 찢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요시야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과 지혜가 부족한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역대하 34장에 보면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34:3) 요시야는 그의 나이 15세 때부터 '다윗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배운 바도 없고, 주변의 누가 '다윗의 길'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조차 하나님이 누구신지 관심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을 섬기는 이방 제사를 묵과하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 예루살렘의 성전이 우상숭배의 소굴로 완전히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엄청난 인부와 건축 자재와 건축 비용으로 완공된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직접 계시하여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역대상 28장 19절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을 직접 설계하여 보여주셨으니 성전을 만들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열왕기상 23장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주인 모시듯 갖다놓고, 그것들에 우상 숭배를 하고, 거기서 온갖 추악하고 가증한 음행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 이후 약 80년, 3세대가 지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신 이 나라가 또다시 우상 숭배의 나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러한 시대에 15세 때부터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던 요시야는 그의 나이 25세 때 먼지 덮였던 토라의 말씀을 듣는 순간 통곡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이 나라를 다스릴 지, 무엇이 '다윗의 길'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몰랐던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우상들을 다 깨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버려 감람산 공동묘지에 뿌려버립니다.(왕하 23:6)

    우리 인생은 한 줄로 평가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 해방을 한 미국의 대통령으로, 마더 테레사는 캘커타의 성녀요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로 불립니다. 우리는 죽고 난 뒤 어떤 한 줄로 인생이 평가 될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요시야 왕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자, '다윗의 길'로 행한 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 자'로 평가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고(신 5:32),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마 7:21) 그 반대가 곁길로 가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고(신 28:15),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잠 28:9)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으니 안먹는 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길입니다. 도둑질 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남의 권리 빼앗지 말고, 사기 치며 물건 팔지 않는 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길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법도만 지키고, 하나님의 소리만 듣는 삶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길입니다.(신 26:17)

    따라서 우리 앞에 생명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법도인 말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면 생명을 얻고 복을 받습니다.(신 30:16) 그러나 법도가 없으면 그 인생이 사망에 이르고, 가문이 망하고, 국가가 망하게 됩니다.(출 20:5) 열왕기서는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계시가 없으니 죄만 가득하게 됩니다.

    호세아 4장 6절의 말씀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시편 19편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 하였습니다.

    또한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계시가 없으면 마음대로 살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잠 29:18) 예수님도 신명기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모든 인생의 모범이 되십니다.(빌 2:8) 구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롬 10:17)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은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 완전히 잠기는 것뿐입니다.(골 2:10)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 속에 계시하는 하나님,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마음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우리는 능히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30:14)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의 삶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본문의 진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충만케 되고(골 3:16), 하나님의 말씀대로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인생길을 걸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신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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