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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에 민감한 공동체가 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0. 9. 16:03

     

    성령강림절 후 열아홉째 주일[20121007]

     

    죄에 민감한 공동체가 되라(행 5:1~11)

     

     

    신앙생활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 감각이 회복되는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처음 인류부터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보시고 '돕는 배필' 곧 '에제르'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부부관계의 원형으로만 이해하는 한계를 넘어 공동체의 원리로 보는 눈이 열려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원리는 서로가 돕는 배필이 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완전으로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에제르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사탄은 그 틈을 노려 개인이 죄를 짓게 하고 공동체로 전염시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런 식으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진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하와에게 알려주는 일에 실패하여 하와가 죄의 유혹에 넘어 가도록 방치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도 함께 선악과를 먹어버린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을 속인 일로 베드로의 발 앞에서 죽음 당한 사건은 공동체 안에 죄가 들어오는 일이 공동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공동체 안의 죄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본보기 사건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이 이렇게 심판하셨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이 주는 신앙생활의 영적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레위기 10장의 나답과 아비후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였다가 그 즉시 불로 심판받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준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이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하나의 경고라면 오늘 본문의 사건은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내리는 신앙의 경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무너뜨렸고 이제는 진리의 터 위에 믿는 자들이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공동체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엘의 예언이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처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20명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그들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성령으로 탄생한 처음 교회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행 2:4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 나타난 처음 교회의 모습인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이런 모습이 공동체 안에 나타난다고 누가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과 반대되는 모습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거짓과 불의라면 성령 충만의 모습은 희생과 나눔과 정직과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처음 교회의 모습 속에 공동체 안에 침투한 죄를 하나님이 그냥 간과하지 않으시고 즉결 심판하신 어찌 보면 무서운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경고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범죄 하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보통은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속이는 것도 죄고, 악을 도모하는 것도 죄고, 거짓말 하는 것도 죄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는 반드시 심판받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영적인 경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먼저 이 사건은 하나님 경외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도 지금 당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 죄의 심각성에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주는 속임수입니다.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이 제일 기뻐하는 것은 죄를 짓고도 무감각하게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성령 공동체를 원하시며 모두가 에제르의 역할을 잘 감당하길 바라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의 신자를 강조하며(롬 12:5), 지체들은 구원의 길을 가며 서로 권면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롬 15:14)

     

    세 번째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에 깨어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경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죄라도 공동체 안에서 그 죄에 대해 함께 회개하며(약 5:16),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딤후 2:15)

     

    아나니아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좋은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은혜만 주시고, 사랑만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오늘날의 ‘아나니아’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나가는(빌 2:12) 하나님 경외의 신앙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항상 시험하고(고후 13:5)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 서로 중보하는 에제르 역할을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롬 12:17) 악을 도모하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롬 1:30) 깨어 의를 행하길 원합니다.(고전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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