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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와 대적할 때 살 길이 열립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11. 2. 10:05

    창조절 아홉째 주일(2014년 11월 2일)

    여호수아 7장 6-13절

     

    죄와 대적할 때 살 길이 열립니다.

     

     

    가. 실패했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라마]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마] 말을 하오리이까?...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우마]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6-9절).

     

    이스라엘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으로 들어가 큰 성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버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 전투의 승리로 너무 자만한 나머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이 성 전투에서 허무하게 패했고 그만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5절에서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한숨 쉬며 탄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 공동체에 다가온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6절에서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회개하거나 경배할 때 하는 행동이지만 여호수아는 지금 그런 심정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회개의 옷을 찢은 것이 아니라 탄식의 옷을 찢었습니다.

     

    7절 이하를 보면 여호수아의 말이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라마]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입니다. 백성들을 대변해서 하는 말로 이제 가나안에서 다 죽게 되었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어찌하여(7절), 무슨(8절), 어떻게(9절)’는 다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라는 원망의 목소리입니다.

     

    전쟁의 실패 앞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의 모습처럼 우리 성도들도 신앙의 위기 앞에서 절망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여호수아는 탄식하며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당할 때 원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살 길을 구하며 응답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고전10:13).

     

    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고민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람마]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10-11절).

     

    여호수아가 ‘어찌하여’라고 하며 원망하니까 하나님도 똑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낙심하는 사람은 과거를 탄식하고 원망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살 길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가’를 구해야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람을 망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근심은 회개할 것을 깨닫게 하고, 살 길을 보여줍니다(고후7:10).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원망과 탄식을 불쌍히 보시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찌하여’는 탄식의 ‘어찌하여’가 아니라 은혜를 주시는 ‘어찌하여’ 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한 사람의 죄로 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물건을 착복한 죄는 도둑질 그 이상인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심각한 배교 행위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저지르는 죄들이 많습니다. 그것으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위기를 맞게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성도들은 공동체의 고난 앞에서 무조건 절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깨닫게 해주신 바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다. 죄와 대적해야 내일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쿰]...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라쿰]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너는 일어나서[쿰]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라쿰] 못하리라”(10절, 12-13절).

     

    하나님은 낙심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쿰’이라는 말이 10절과 13절에서 ‘일어나라’로, 12절과 13절에서는 ‘맞서다’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여기서 네 번씩이나 쓰여 강조된 ‘쿰’은 단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뜻이 아닙니다(막5:41). ‘원수와 맞서라, 대적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6장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엡6:11). 물론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멸하기 전까지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한다”고 하였지만 실제 이스라엘이 대적해야 할 원수는 아이 성이라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아간이라는 내부의 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비록 그가 아간의 범죄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작은 죄가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실패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그들이 일어나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깬 죄를 상기시키며 돌이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사59:2).

     

    사람이 실수하지 않고,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으며 완벽하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사람으로 인해 함께 어려움을 겪고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실패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보고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십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처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내일의 희망을 주십니다(욜2:13).

     

    라. 믿음 안에 바로 서면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철저히)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13절).

     

    죄와 거룩은 함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죄를 회개하고 스스로 돌이켜 거룩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시대를 시작하며 아간의 범죄를 보게 한 이 사건은 ‘이런 죄에 대해서는 이렇게 처벌하라’는 처방전이 아닙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아간같이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거룩하라’는 피엘형으로 쓰여 ‘철저히 거룩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의 거룩을 원하셨으면 죄를 완전히 제거하라고 명하셨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만이 다가올 진노를 피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마3:7).

     

    성도의 승리는 믿음 안에 바로 설 때 주어집니다. 고난을 당하고 실패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실패의 원인을 바로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내일을 기대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바로 서면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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