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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을 사모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2. 25. 08:53

    사순절 둘째 주일[20130224]

     

    주님을 사모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라

    (빌 3:17~21)

     

     

    소아시아의 드로아에 있던 바울은 어느 날 밤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요청을 듣습니다.(행 16:9)

     

    바울은 이 환상을 본 후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드로아를 떠났고 사모드라게 섬을 경유하여 네압볼리 항구에 이릅니다. 거기서 이그나티안 대로를 따라 마게도냐 지방의 첫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하게 됩니다.(행 16:12)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 땅에 세운 첫 번째 교회이고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 유럽 선교의 문을 열게 되는 처음 교회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 상인과 그녀의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또 감옥에 갇혔을 때 지진이 나서 감옥 문이 열리고 그 순간 자결하려는 간수를 말리면서 간수와 그 식구들에게 예수를 영접시키는 일도 있게 됩니다.(행 16장)

     

    이외에도 빌립보서에는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 에바브로디도 등의 이름이 빌립보의 성도들로 언급됩니다. 이 귀한 영혼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빌립보서에 담긴 문장들 예를 들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빌 1:8),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 3:18)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빌 1:7)

     

    그러면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무엇을 그토록 간절하게 권면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늘의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본문 2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단어 ‘아펙데코마이’는 ‘부지런히 인내하며 사모한다’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일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모습을 어떻게 증거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추구하는 일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하늘의 시민으로서 주님을 사모하라고 강권하는 것은 빌립보의 성도들 가운데 복음을 잘못 이해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바울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은 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을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오히려 다툼을 일으키고 수치스러운 일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복음과는 정반대의 일인 사탄의 일을 할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제자들에게 알리실 때에 베드로는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마 16:22)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 다른 번역에서는 ‘너는 나의 걸림돌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새번역)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공동체 안에서 방해가 되고, 신앙의 길에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면 그 결과는 멸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여기서 ‘그들의 신은 배’라고 말하는데, ‘배’라고 쓰인 원어 ‘코일리아’는 ‘코일로스’에서 온 말로 ‘속이 빈, 공허한’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배는 비어 있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채워야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런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 곧 땅의 일이고 우상숭배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그 끝은 멸망이라고 경고합니다. 어떤 영어 성경을 보면 ‘그들은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CEV), ‘그들의 끝은 지옥으로 떨어진다’(TEV)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의 표현으로 복음을 설명하면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빌 2:8)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에 속한 삶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늘 시민의 삶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교리문답처럼 아는 것으로 끝나고, 이천년 전의 이 사건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땅에 일에 매인 삶은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삶이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허물과 죄를 생산하는 땅의 일을 하던 삶에서 거룩을 추구하는 하늘 시민으로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복음은 실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였습니다.(골 3:1~2)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의 사명에 끝까지 순종할 때 영광의 몸과 영생의 복이 주어질 것을 성경은 약속합니다.(빌 3:21) 저는 우리 모두가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기도하며, 영광의 몸을 입는 그 날까지 주님을 사모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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