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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2. 6. 11:46

    대강절 첫째 주일(2013년 12월 1일)

    누가복음 3장 1-6절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예수 오심을 기다리며 이 땅에 평화를 소망하는 대강절기를 맞았습니다. 대강절이 교회력의 시작인 것처럼 지금은 신앙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예수 생명의 잉태로부터 하나님 형상의 온전한 회복에 이르기까지, 구원 여정의 완성에 이르길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영적인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주전 4세기 초에 헬라 제국에 의해 또 그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 다시 지배를 받는 계속되는 비운의 시대를 겪게 되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라기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말4:5).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말라기 예언의 성취를 증거합니다. 빈들의 요한이 바로 오실 엘리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가. 깨어서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자를 찾기 힘듭니다(1절).

    당시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본문은 디베료 황제가 다스리던 15년 째 곧 주후 28년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때 로마는 유대의 총독으로 본디오 빌라도를 세웠고, 그 밑에 네 명의 분봉왕을 두었습니다. 본문에 헤롯과 빌립, 루사니아가 언급되었고, 아켈라오는 폭정으로 일찍 쫓겨나서 총독 빌라도가 직접 다스린 것으로 알려집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또 다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삶을 생각해 보면 영적인 암흑기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누가가 시대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그 이면에 당시 이스라엘의 무너진 신앙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새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예언과 함께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말4:6).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며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오시길 기다리며 깨어 준비하는 성도를 찾기가 힘듭니다. 종말론적 신앙을 부르짖는 사람도, 추구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나. 현실만 관심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2절).

    2절에 보면 대제사장의 이름 안나스와 가야바가 나옵니다. 이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대표로 언급된 사람들입니다. 대조적으로 사갸랴와 요한의 이름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찾는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할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임하지 않고, 빈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했다고 본문은 이야기 합니다. 이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무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주권이 사라진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기 전의 삭개오처럼 로마의 앞잡이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현실을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민족의 운명 앞에서 현실과 타협할 수는 없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현실만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은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혼의 소망이 없습니다.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 빈들에 간 것은 세상을 등지고자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시대적 사명을 받았기에, 준비되고 능력 받기 위해 빈들에 간 것입니다(눅1:17).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개인의 소명과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말씀을 주십니다(2-5절).

    본문 1절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나오고, 2절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있던 곳은 화려한 궁전이었고,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들에 있던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장소를 구분해서 어디는 임하고 어디는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의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은 주님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빈들은 오늘 우리에게 물질적으로도 가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실제 요한은 광야에서 마음을 비우고 청빈함으로 살았습니다(마3:4). 그런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복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한은 비로소 요단강 근처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받으면 능력이 생깁니다. 말씀을 받으면 성령님이 그 입술을 주장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을 선포하였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요한이 선포한 이 말씀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이 곧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이라는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 곧 공평과 정의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라.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6절).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한 사람들이 참여할 영광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에게는 이런 영광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2천 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해주시기만 바라고 있었지 삶으로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자로서의 메시아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가 어떤 성격이었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의 자세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삶으로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의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고, 삶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구원의 문은 열려 있지만 구원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힘써 준비해야 합니다(마22:14). 깨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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