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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자의 심정으로 잃은 양을 찾읍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0. 9. 15. 10:43

    성령강림절 제16주일[20100912]

     

    목자의 심정으로 잃은 양을 찾읍시다.
    (눅 15:1-7)

     

    성경에서 한 마리 잃은 양의 비유는 마태복음 18장과 누가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비유이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이 두 비유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조금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소자라는 말씀에 이어 이 비유를 하시는데, 신앙 생활을 하다가 잘못된 길로 가는 그 한 사람, 소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오늘 본문의 잃은 양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 하나님을 부인하며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잃은 양으로 비유됩니다. 그래서 멸망 길로 가는 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의 기쁨이 크다는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메시지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함께 생각하며 특별히 잃은 양의 주인의 심정에 주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시게 된 배경을 보면 1절과 2절에서 보는 것처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난과 불평이 그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음식까지도 같이 먹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난을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들만 율법을 지키는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로마서 3장의 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고, 의인이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담의 자손으로 그 죄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러나 여기서의 완전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이와 관련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어서 말씀합니다. 26절에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전해 질 수 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켰다는 것으로 나의 의를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다가도 인생 말년에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인물을 우리는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도 죄의 유혹에 언제든 넘어갈 수 있다. 내 인격을 믿지 말고, 내 지식, 내 경험, 내 의지조차 그것 자체에 절대 믿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일말 있다면 나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에게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떠난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길로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습니까?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잃은 양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낸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멸망 길로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는다는 것은 원래는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유대인에게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친밀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을 믿고 사는 것, 곧 그런 사람은 자신이 신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와 거듭남으로 현세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간절히 원한 사람은 나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세상에서 천대받고 소외된 사람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 의인 아흔아홉보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이 되는 것은 의인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인 하나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일진대 그런 마음을 가진 4절의 어떤 사람은 누구여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었는데 이 병자가 예수님께 뭐라고 말하냐면,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못에 들어가고 싶은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낫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못에 가야 병이 낫는 줄 알았지만 예수님은 병 낫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직접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 세상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품으로, 교회로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의 찾아다닌다는 말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전하고, 권하고,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골로새서1장 28절, 29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세상의 속한 사람, 마귀의 세력 아래 갇힌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자유로 인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찾아가야 합니다.

     

    골로새서에서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0장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할 일은 불신자, 하나님 없이 사는 자,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전하고, 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방식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전하고 권하고 가르쳐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삶으로 보여주고 가르치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전도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은 행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론을 먼저 가르치고 그 후 실습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보이시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 만나면 커피도 권하고, 먹을 것도 권하고, 좋은 책도 권합니다. 이처럼 불신자인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권하는 것이 삶과 함께 이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삶으로 변화를 권하십시오. 이제 다르게 살아보지 않을래?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복음의 삶을 살며 잃어버린 양을 찾아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초대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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