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주를 향한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4. 29. 16:50

     

    부활절 다섯째 주일[20130428]

     

    주를 향한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요일 3:1~3)

     

     

    어떤 목사님이 ‘인생 빼기 사랑은 헛된 인생’(인생-사랑=헛된 인생)이라고 수학 공식처럼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참 인간의 모습을 상실하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 봅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주를 향한 소망이 없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망 없는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방향키 없는 배와 같습니다. 목적 없는 인생은 종국 후회하는 인생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리 저리 떠돌다 인생의 시간이 다갔는데도 여전히 바다 위에만 떠 있다면 무의미한 헛수고만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종착역은 천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의 목적을 ‘거룩’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하라' 하신 이유는 '거룩한 삶의 열매가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롬 6:22) 거룩한 삶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주를 향한 소망이 있는 자가 주와 같이 거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3절) 사도 요한이 말하길 하나님의 자녀는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진 자이고, 이 소망이 있을 때 비로소 주와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깨끗하다’라고 번역된 ‘하그노스’는 ‘정결, 성결’의 의미로 ‘거룩하다’라는 ‘하기오스’와 어원을 같이 하는 말입니다. 소망(所望)이란 ‘바라보는 장소나 대상’을 의미하니까 따라서 주를 향한 소망이란 바라보는 대상이 주님이라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바라보고 동경하는 대상이 살아계신 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딤전 4:10) 내가 바라보는 대상을 내가 닮게 된다는 것이 '바라봄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주님이면 우리는 주님의 성품인 ‘거룩함’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주와 같이 되고자 하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동경의 대상이 누구냐가 곧 어떤 신앙을 가졌느냐를 판가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가장 중요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출 20:4) 우상을 만들어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레 19:4)

     

    하나님의 자녀다움의 구별은 바라봄의 대상이 다름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모습으로 구별됩니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주를 향한 소망을 품고 거룩한 삶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심을 깨달아야만 신앙의 정도(正道)를 걸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이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1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공로 덕분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모습은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엡 2:1)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만한 어떠한 공로나 자격을 처음부터 갖고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시고 처음부터 선택권을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 2:17) 그러나 아담은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인의 마음을 먹은 가인에게 찾아가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하나님은 마음으로 품은 죄를 지적하시며 돌이키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불순종하고 범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생명을 택하고 복의 길을 갈 것을 결단하며 살길 원하시나(신 30:19) 선민 이스라엘조차 불순종하고 거역하여 결국 광야에서 멸망 받았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고전 10:5)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의 성향을 아시지만 온 인류에게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딤전 2:4)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의 죄 값이 담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주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었습니다.”(롬 3:25)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어떠한 사랑’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거룩한 삶은 하나님 자녀의 존귀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사탄은 이러한 존귀함을 무너뜨리려고 하나님의 자녀를 지금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로’(요일 4:1), ‘미혹의 영으로’(요일 4:6), ‘광명의 천사로 변장하여’(고후 11:14) 자녀의 마음을 훔치려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하나님 자녀로서의 존귀함이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주의 재림 때 반드시 드러날 것을 확신하며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2절)

     

    이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도를 가르치시고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마 17:2),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부활의 모습으로(고전 15:5)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를 향한 소망을 지키는 과정에는 비록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지만’(롬 5:4)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부활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히 10:36)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 자녀의 소망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믿음과 인내로 ‘굳게 붙잡을 때에’(히 10:23) 이 땅에 살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고 또한 하늘만 바라보는 극단적 종말론에 빠지지도 않으며 주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