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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 금식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1. 8. 20:00

    창조절 열째 주일(2013년 11월 3일)

    이사야 58장 3-9절

     

    참된 금식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지킬 나의 절기들을 공포하라고 하셨습니다(레23:2). 그 가운데 7월 10일은 속죄일입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전체가 금식하는 날입니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레16:29).

     

    이 날은 ‘안식일 중에 안식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더하여 금식까지 하는 날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속죄일은 금식하는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속죄 받는 날입니다.

     

    이사야 58장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은 지 600년이 훨씬 지난 시기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며 신앙을 지켜나가야 하는 시대적 사명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아직도 형식적인 제사와 형식적인 금식을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금식 행위를 하면서 어찌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가 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비판하였습니다. 본문은 금식을 하되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금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3-4절).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3-4절).

     

    금식과 단식투쟁은 다릅니다. 단식투쟁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세속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금식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요구를 깨달아 순종하려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금식한다고 하면서 실제는 단식투쟁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금식을 하면서 악행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선지자는 고발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열심으로 교회 다니고, 부르짖고 기도도 하고, 전도지도 돌리는데, 교회를 떠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자기 소견대로 사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종교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니라 단식입니다.

     

    나. 형식만 남은 금식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5절).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5절).

     

    머리를 숙이고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는 형식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형식이 중요한 이유는 그 안에 내용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라는 형식은 하나님의 뜻을 담은 그릇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따르지 못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할 때는 그것이 위선이 되고 가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식적인 금식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는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비판하셨습니다(마6:16). 형식적으로만 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금식이 하나님이 명하신 금식입니다.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공의와 사랑이 실천되는 금식입니다(6-7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6-7절).

     

    금식은 내 식욕을 차단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금식하라고 하신 이유는 육적 욕구를 끊듯이 우리 자신의 욕구를 차단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 먹지 않으면 고통스럽습니다. 금식하는 고통 속에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통회하게 됩니다. 내 배가 고통스러움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돌볼 수 있게 됩니다. 불의를 행하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금식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이어지고 증명됩니다. 금식하는 행위로 끝내지 말고 공동체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자기의 배를 비우는 금식으로 끝내지 말고 배고픈 자의 배를 채워주는 사랑을 하는 금식이 참된 금식입니다. 이것이 금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라. 참된 금식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8-9절).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8-9절).

     

    모든 인생에는 출생과 운명이 있고,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습니다. 이처럼 금식과 축제는 하나님이 엮으신 행복의 실타래입니다. 사실 ‘금식’(fasting)과 ‘축제’(feast)는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면 더 이상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깊은 뜻이 여기 숨어 있습니다(마9:15).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6:33).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이고, 11월에는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축제가 이어지려면 참된 금식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치유의 빛이 속히 임할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에게 명하셨던 일 년에 한 번씩 금식하라고 하신 속죄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계절입니다. 금식의 형식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금식을 하면 축제의 삶이 이어지도록 우리의 삶을 설계하셨습니다. 참된 금식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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