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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믿음은 충성되게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0. 10. 4. 00:35

    성령강림절 제19주[20101003]

     

    참 믿음은 충성되게 행하는 것입니다.(눅 17:5-10)

     

    제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과 이번 주 설교 본문도 함께 연구했는데, 목회하신 지 30년이 넘으신 이 분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교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성경통독대회를 했는데, 그 결과 여러 차례 통독하여 1등상을 차지한 성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거나 담임 목사의 목회에 뜻을 같이하는 성도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도 빠짐없이 나오는 성도가 교회 봉사 면에서는 소극적이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 지, 그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이 성경을 많이 읽는다거나 새벽 기도 출석 100 퍼센트로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히려 목회자의 방향에 반대하는 자신의 옳음을 그런 것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외식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했을까요? 이 시간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되새겨보고, 믿음을 더해달라는 제자들의 간청에 대답으로 주신 예수님의 비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성경 안에서 믿음을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지는 않습니다. 구원이란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구절이 믿음이라든지, 구원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내리지 않지만 우리는 성경 전체를 보며 이러한 성경의 중요한 단어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표현해볼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인지 한번 정의내리고 가볼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구원이란 예수님을 통해 죄 용서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하여 생명력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주제인 믿음을 생각해 본다면 믿음의 정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 것이며, 그 아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뭐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물을 받았다고 그 선물이 항상 내 손에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내가 응답하여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이고, 아주 불완전한 것입니다. 믿음은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옛날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그 중앙 회중석에 커다랗게 새겨진 라틴어 글귀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 말씀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우리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사도 베드로를 기념하여 세운 웅장한 베드로 성당 그 중심에 하필이면 베드로의 실패를 기억나게 하는 이 성구를 새겨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경고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키질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 아닐까요? 키질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알곡을 얻을 가능성이며, 또 하나는 알곡조차 날릴 가능성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키질을 해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사탄이 끊임없이 키질하는 타작마당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의 믿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옛날에 교회 좀 다녀봤다, 대학 다닐 때 예수님 영접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예수님을 진짜로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 즉 지금 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느냐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0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 앞 절에서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한 것이고,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 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소유자들 열 여섯 명을 설명하고자 하는 도입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절을 단순히 믿음의 정의로 오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6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주소서”라고 한 것의 답변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곧 진짜 믿음이 있으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겨자씨 한 알은 참 믿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큰 믿음, 대단한 믿음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는데, 너희에게 믿음을 이미 주었다. 너희가 참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뽕나무도 옮기신다.’ 이런 뜻입니다.

     

    겨자씨처럼 아무리 작아도 진짜 씨는 땅에 심기워지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멋있어 보이거나 커도 프라스틱 모형 씨앗은 발아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겨자씨는 진짜 믿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같은 뿌리가 깊은 나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뽑아낼 수 없는 나무도 뽑혀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주인과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자신이 마땅히 할 일입니다. 주인이 명한 것을 종이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감사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종에게 이런 칭찬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종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주인의 칭찬을 받으면 더 없이 기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믿음과 충성과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단순히 입술로 주여, 주여 고백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이 믿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충성스럽게 행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 피스티스와 충성, 피스토스는 같은 어원입니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을 믿음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죽은 씨앗과 같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입술로 정답을 말하는 것을 믿음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로 입술로는 정답을 말했습니다. 마르다도 입술로는 정답을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한 문장씩만 떼어 놓고서 보면 정답입니다. 그러나 그 문장의 전후를 보면 그들의 대답은 하나는 순간적인 믿음이요, 하나는 입술로만 고백하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믿음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말씀대로 다 행한 것, 충성되이 일한 것 그것이 참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행하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칭찬 받을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제자들의 이 간청에 예수님은 ‘믿음은 이미 주었다. 그 믿음이 있다면 믿은 바대로 행하면 된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뿌리가 뽑히고 바다에 심기우고 하는 것은 진짜 믿음이 있는 자의 행함에 따른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둘로스일 뿐입니다. 종이 할 일은 주인의 명령을 충성되게 행하는 것, 그리고 주인이 시키지 않았을지라도 기뻐하시는 일을 자원하여 더해드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3-4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번 한 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믿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성되게 행함으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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