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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믿음을 구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10. 26. 15:03

    성령강림 후 제21주/창조절 제8주(20091025)

     

    참 믿음을 구하라.(삿 6:33-40)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평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라는 가장 큰 죄를 범함으로 주변 민족을 이용하여 7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놓으면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의 여러 유목인들이 쳐들어와서 다 망쳐놓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무려 7년 동안의 궁핍함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치고 두렵게 만들었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사람을 부르시는데 그가 바로 기드온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입니까? 기드온은 평범한 농사꾼이었습니다. 게다가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11절을 보면 기드온이 밀을 타작하는데, 타작마당에서 하지 않고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시나 적들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부르며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자신에게 강한 군사라니요. 또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라고 하니까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긴요,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사자에게 즉각 순종하지 못하니까 이제 하나님이 직접 기드온을 대면하십니다. 상상 해보면, 상황이 긴박하고 놀랍습니다. 14절에 하나님께서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이 이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세요. 말도 안 됩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뭔지 안보이십니까? 도리깨 들고 싸우러 나가라니요? 그리고 우리 집 보세요. 가난해요. 힘없고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은 뭐라고 응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예”하는 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약한 기드온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16절) 그러나 기드온은 즉각 순종하지 못하고 무슨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은 마치 모세를 부르시던 그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부르시는데, 모세는 자꾸 못하겠다고 합니다. 입이 어눌하니 뭐가 안 되니 자꾸 핑계만 됩니다. 하나님은 참다 참다 그만 모세를 죽이려 합니다. 출 4:24를 보면,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이때 누가 모세를 살립니까? 아내 십보라입니다. 십보라는 아들의 포피를 베고 모세의 몸 일부에 갖다 대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보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아닙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고 택하셨는데 왜 이렇게 도망 다니십니까? 약속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기드온도 하나님의 말씀에 자꾸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의심하고 이제 당신이 정말 함께 하신다면 그렇다는 표징 좀 보여 달라고까지 합니다. 이런 기드온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저도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으나 조금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농사꾼보고 싸우러 나가라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하시고 참으시지는 않으셨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불이 바위에서 나와 가져온 예물인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찍어버린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이 두려워 이 일을 낮에 못하고 밤에 행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가문에 있는 우상숭배의 요소는 없습니까? 하나님께만 헌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영적 우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우상의 요소들, 우리 집에 흐르는 영적 우상의 요소들,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영적 우상의 요소들이 제거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영적 갱신 곧 다시 태어남이 우선입니다. 기드온이 우상을 제거하는 사건은 아버지 요아스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아들 때문에 아버지도 변한 것입니다. 아버지도 담대하게 “바알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고 사람들에게 항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동역자들도 붙여주십니다. 본문 34절에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한 후 기드온이 나팔을 불었을 때 아비에셀을 비롯해 많은 무리가 그를 따르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드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면 되는데, 또 의심이 들고 두려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막상 싸움에 나가려니 겁이 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또 하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주변 땅이 마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대로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또 한 번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양털만 마르고, 주변 땅이 다 이슬이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또 그대로 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순종이 따르지 않을 때 과연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 믿음, 가짜 믿음을 구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라면 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마 7:16) 참 믿음이라면 순종의 행위가 따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나야합니다. 믿음이 자라나면 삶이 변하고, 말씀의 뜻을 더 알고 싶고, 제자로 헌신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자를 만드는 단계가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성숙해지지는 않고 계속 주변 탓, 상황 탓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르치든지 배우든지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하며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증거를 보여 달라는 모습은 아닌지요? 무엇인가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있다면 믿음 없음을 회개하며 참 믿음을 얻기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까지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더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요 20:27, 29)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참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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