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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심의 죄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2. 15. 10:00


    대강절 셋째주일[20081214]

     

    탐심의 죄(눅 12:13-21)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사역에 있어 그 절정에 이르는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앞선 본문 12장 1절에 보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수만 명이 모였음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를 교훈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많은 사람이 몰려드렀을 때,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인기 몰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군중들에게 신앙의 정곡을 지적합니다. 곧 바리새인의 외식과 위선을 경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본질적인 면인 마음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는 형이 아버지의 땅을 물려받고, 재산은 반을 차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재산의 반은 동생들이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소연한 것은 아마도 형이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다 차지하고 동생들에게는 나누어주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나는 다툼의 문제를 해결하는 재판장이나 마을의 원로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형과 동생이 다투는 표면적인 문제 그 이전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문제는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탐심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탐심이라는 죄는 그 욕구를 성취하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공격하고, 비방과 살인까지도 일삼게 되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이 전하는 메시지는 15절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질문한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내심 궁금해서 주변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어 예수님은 이 탐심의 문제를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16-18절,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이 부자는 계속해서 말하길, “내가,” “내 곳간을,”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부자의 착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가 번 돈이라고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운 기업이라고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일으킨 사업이라고 내 것이 아닙니다. 시간 조차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져가시면 나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십일조, 날의 십일조까지도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커녕 심중에 하나님은 어느 곳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19절에 보니까, 또 이 부자가 말하길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 동안 주님이 가르치신 팔복 말씀으로 여러번 설교 했는데, 팔복의 말씀을 한 마디로 말하면 “행복은 그 사람의 소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됨에 달렸다”라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평안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근거를 자신이 쌓아둔 소유에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그랬습니다. 돈을 쌓아두려는 욕심은 결국 미혹을 받고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편안할 것 같지만 더 많은 근심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 부자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진정한 평안은 오직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2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부자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내 땅에서 생산된 소출이니까 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입니다. 무엇보다 이 부자가 착각한 것은 생명의 주인이 자신인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영혼을 다시 찾겠다(demand back)”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주셨던 분이 다시 찾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이제 예수님의 설교의 결론이자 오늘 설교의 결론이 21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주님께서는 이 시대의 부자라는 통념을 바꾸셨습니다. 돈이 많다고 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는 내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곧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소유와 일을 맡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 길 잃은 영혼을 살리는 자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대해 부요해질 수 있는가?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라.” 탐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탐심을 방치해서 자기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랐을 때에는 그는 이미 탐심의 노예가 되어있기 십상입니다. 탐심의 제거는 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엡 5:5,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하였습니다. 탐욕의 죄는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 법입니다.(약 1:15)

     

    그렇다면 탐심을 제거하는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베푸는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살하겠다고 그랬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목사님을 한번 뵙고 싶어서 왔고 그랬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의 가정 이야기, 사회적 상황, 그 사람의 고통 당하고, 상처난 마음 등 이야기를 다 듣고는 “아 정말 죽고싶다고 말할만하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길 그러면 죽기 전에 단 며칠이라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자신이 하는 일인데 일할 사람이 많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그랬습니다. 그 목사는 집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는 일을 했습니다. 헌금만 모은 것이 아니라 본인도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결국은 목사님을 따라 이렇게 도와주다보니 돕는 사람도 건강하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삶의 보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길, “이 목사님이 만약 나에게 돈이든 집이든 베풀었다면, 나는 다시 힘들고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목사님은 이상하게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받으면 죽고 베풀면 산다는 것을.”

     

    우리는 부와 명성이 목적이 되는 순간 타락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손에 재물이 있는 동안 그 재물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내 손에서 떠날 때만 돈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 몸과 내 재능, 내가 가진 모든 소유,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우리를 값없는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으니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나누어주고 베풀면 산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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