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나님은 성도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3. 1. 05:00

    사순절 둘째 주일·삼일절 기념주일(2015년 3월 1일)

    출애굽기 3장 7-12절

     

    하나님은 성도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가. 하나님은 성도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7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7절).

     

    야곱의 자손이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번성하였고 더욱 큰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9절을 보면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괴롭히다’는 말이 분사로 쓰여 모질게도 괴롭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까닭 없는 고통 속에서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쉬파트’(정의)를 기대했지만 백성들은 ‘미스파흐’(포학)를 행하고, ‘체다카’(공의)를 바랐지만 ‘체아카’(울부짖음)뿐이었다고 이사야가 탄식했던 적이 있습니다(사5:7). 하나님의 뜻을 떠난 사람들이 있으면 한쪽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불의를 행하면 그로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또 보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들의 근심을 다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았다, 들었다, 알았다’는 모두 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분명히 지켜보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들의 아픔을 결코 모른 채 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녀들이 당하는 억울함을 보시고, 그 신음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나. 하나님의 목적은 성도의 구원에 있습니다(8절).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8절).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은 자녀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마10:30).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시121:4). 하나님은 자녀들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을 결코 모른 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관심 갖고 지켜보십니다(요14:18).

     

    하나님은 바로의 손아귀에서 울부짖는 자녀들을 구출하려고 ‘내가 내려가겠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건져내고 그들을 좋은 땅으로 인도하겠다!” 여기서 ‘건져내다, 인도하다’는 히필형으로써 주어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불의를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이제 이스라엘을 고통 가운데서 구원해내겠다고 하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자녀들을 고통 가운데 넣어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악인들의 간계로 인해, 불의한 자들의 억압으로 인해, 사회구조적인 악으로 인해 무고하게도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자녀들을 억울하게 하시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시고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덩이에 빠진 양을 찾아 끌어내려는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마12:11). 하나님의 목적은 고통 중에서 울부짖는 성도들을 구원하는 데에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성도의 사명입니다(9-10절).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9-10절).

     

    하나님은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원문을 보면 9절에 ‘가라’는 없고 10절에는 있습니다. 그렇게 10절을 사역하면 “이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낼 것이니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내도록 하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시대적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대리자로 임명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끝내게 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자녀답게 살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기로 한 특별한 사명의 부여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건져내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히필형). 즉 하나님이 모세 보고 가서 구원하라고 하셨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해도 일제의 침탈과 학대로 우리 민족은 주권을 빼앗기고 고통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라를 찾기 위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난 날이 96년 전 오늘입니다. 민족의 부르짖음 속에서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불의 앞에 굴복하지 않았던 손정도, 유관순 등을 비롯한 수많은 사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삼일운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성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 구석 구석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회구조악에 눈을 떠야 합니다. 지구촌에서(전쟁, 기아), 우리 사회에서(폭력, 갑을관계), 교회 안에서의(세습, 부축적 등으로) 부르짖음을 해결해야 하는 사명이 성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도는 주저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라.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11-12절).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11-12절).

     

    모세는 민족을 구원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 앞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애굽에서 도피한 이후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양 떼를 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서도 무슨 확신 보다는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감히 무엇이기에 바로 앞에 가겠습니까?”였습니다. 바로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학대한 장본인이요 근접하기 힘든 왕입니다. 우리라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임마누엘의 믿음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누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겠습니까? 임마누엘의 믿음을 가진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바로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나간다”고 외쳤습니다(삼상17:45).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의 앞에 침묵하게 됩니다. 민족의 고통 앞에, 성도들의 부르짖음 앞에 입 다물고 숨어있게 됩니다. 성도는 부르짖음을 그치기 위해 정의를 강물같이, 공의를 흐르는 물같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암5:24). 하나님은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는 자들을 복되다고 인정하십니다(시106: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