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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을 기억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1. 29. 11:30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 추수감사주일[20081123]

     

    하나님을 기억하라(신 8:11-2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는 1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절기입니다. 물론 감사는 오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번 감사로 끝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5:18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하신 후에 엡 5:19 이하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무엇보다 성령 충만한 자의 특징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친다는 데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감사의 조건이 생길 때 감사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다 예상치 못한 고난을 당할 때, 인생의 역경 한복판에서 감사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내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을 볼 때 감사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의 이유가 되시고, 전부가 되시는 주 하나님 때문에 성경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잊지말고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적인 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아무도 찾지 않는 사막에서 고독 속에 40년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조차 잊어버렸을 무렵, 그의 나이 80에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누구보다 생생하게 경험하며 그는 또다시 광야 40년을 보냅니다. 그런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입니까?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하십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고 살면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난 현대인들의 모습, 돈만 있으면 하나님 없이도 잘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산 인생은 궁핍해졌습니다. 하나님 없이 산 인생은 비참해졌습니다. 하나님 없이 산 인생은 자신을 삶을 잃어버린 채 자유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현대인들이 아무리 먹고 마시고 배채워도 그 마음에 기갈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데 근본 이유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 설교를 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어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을 수 있으랴”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시간 하나님을 생각한다 해도 예배가 끝나면 머리 속에서 하나님은 금방 사라지고 잊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에게는 망각의 기능이 있어 반복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20분이 지나면 47%를 잊어버리고, 이틀이 지나면 66%, 6일이 지나면 75%, 20일이 지나면 80%를 잊어버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보고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기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질 하며, 하나님을 잊지 말게 하신데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이라는 think에서 감사 thank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감사를 결정합니다. 감사는 생각의 열매입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어떤 사람은 감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까요? 그것은 생활이 안정되고 부요할 때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신 8:12-14,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죽기 일보직전에 있는 사람의 기도는 간절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기도 소리에 간절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급박하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기있고, 잘나갈 때, 생활이 안정될 때 하나님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떠나갑니다. 생활이 안정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등 따뜻하고 배불러 하나님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이미 떠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건망증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을 교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은 치매, 건망증이 아닙니다.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까?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1.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14절 하반절 이하를 보니까,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센 땅의 뜨거운 태양 밑에서, 지열을 받으며 파라오를 위해 벽돌을 구웠습니다. 노예에게 무슨 인격이 있었겠습니까? 태어난 사내 아이는 무조건 강가에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비천한 이러한 삶에서 구원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이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건짐받은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 무엇보다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2.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의미는 광야 생활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 8:15을 보십시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광야가 어떤 곳인가? 광야란 위험한 곳입니다. 끝이 안보입니다. 물이 없는 곳입니다. 뱀과 전갈의 위협이 있습니다. 밤과 낮의 기온의 차이로 살기 힘든 곳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곳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10일이면 지나갈 길을 40년 동안 훈련받게 하셨을까?

    16절...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우리에게 복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단 하루도 살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낮아질 때 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의 훈련 학교를 거치게 하십니다.

     

    낮아짐이 없이 주어진 복은 실은 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습니다. 낮아짐 없이 소유한 돈은 다이나마이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낮아짐 없이 부와 명예가 주어지면 교만해집니다. 의기양양해집니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낮아지고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의비하고 하나님께서 일하도록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광야의 시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입술에는 감사가 넘쳐나고, 우리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기거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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