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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을 만나는 길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5. 31. 22:24

    부활절 여섯째 주일[20110529]

    하나님을 만나는 길(요 4:9-24)


    지난 한 주 중랑지방 웨슬리 회심 기념 성회에서 강사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강원도에서 목회 하는데 하루는 그 교회 집사님이 전 교인들에게 삽겹살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날 저녁 교인들과 삼겹살 파티를 배부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기도를 하는데 강대상에 쪽지 하나가 올라와서 보니, 그 쪽지에는 어제 삼겹살 대접한 그 집사님 집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급히 교인 집에 달려갔는데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목사님, 어제 삽겹살 안먹었으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감신대 학술지인 「신학과 세계」 이번 봄호에 실린 이원규 교수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왜 한국교회에서 뜨거운 성령운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의 교육수준, 경제수준, 복지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1년에는 83달러에 불과했고, 1980년에 겨우 1,800달러에 도달했으나, 2010년에는 2만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흔히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를 넘게 되면 종교적 관심이 약해지기 시작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원규 교수도 결론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잃어버린 영성, 도덕성,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한국교회가 살 길입니다. 그러면 영성이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프란시스 쉐퍼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대해 밝히 알아야 하며, 그분과 교제해야 한다”는 말로 참된 영성에 대해 요약합니다.

    지난 주 천국이 하나님 품이라고 표현한 의미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이겠지요. 하나님을 아주 순수하게 깊이 사랑하는 그 영혼을 하나님은 자신의 품에 꼬옥 안으십니다. 영성은 이런 관계성의 능력이라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영성의 삶을 과연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이것이 중요한데 이 시간 이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영성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4장 4절에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과하였다는 말씀은 벌써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인들과 피가 섞인 백성이라하여 유대인들은 그들과 교제하는 것을 금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시고,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리, 창녀들과 함께 식사했다는 것과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했다는 것 이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와 대화했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 문화적 배경에서는 아주 꺼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행동은 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비정상적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작은 행동 하나도 의미 있게 행하신 것입니다. 여인과 한가하게 쓸데없는 대화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남녀의 차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자들과 함께 공적으로 나타나심으로 이런 남성들의 편견을 깨셨습니다. 여자들에게 신학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진정 삶의 갈증을 해갈해주는 샘물 같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자 하십니다. 의도적인 접근이지요. 어둠의 그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그 여인에게, 영혼에 빛이 들어오는 길을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먹는 이 물, 눈에 보이는 물, 한 번 마시고 다시 목마르는 물이 아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 영혼이 살아나는 물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그 샘물이 예배 곧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음을 말하기 전에 굳이 이 여인의 과거사를 들추고야 맙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면 그 관계를 막고 있는 불신앙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회개 없이 칭의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표적을 보이신 사건 다음으로 성전을 정화하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 역시 요한복음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예수님 공생애 순서와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서두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성전 안의 소와 양과 비둘기는 하나님에게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우리 안에 욕망들을 상징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들 그것은 우리의 육신을 지배하는 정욕 덩어리의 상징입니다. 우리 안의 양들은 무언가 자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노예근성, 부자유의 상징입니다. 또한 우리 안의 비둘기는 좀처럼 안식을 취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씀 없는 삶, 세상 소리에 넘어가는 얇은 귀를 상징합니다.

    온갖 세상 것들로 가득 찬 당시의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이런 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내몰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거쳐 간 여섯 남편의 실체는 그 동안 이 여인이 추구했던 우상숭배들의 상징입니다. 여섯 남편, 그것은 곧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거의 우상숭배 그것을 다 청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그 영혼에 하나님의 존재가 깃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과 대화하며 갑자기 예배드리는 장소를 이야기 하는 것도 영적으로 보지 않으면 엉뚱한 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귀 기울려 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어마어마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추구하고 찾고 헤맸던 육의 세계, 물질의 세계에 근본 생명의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려면 우리도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것들로 채워지면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교만, 시기, 분노의 암 덩어리들을 제거하고 우리 영혼을 정화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얻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는 것은 내 생각, 내 이성, 내 감정까지도 제어하는 영의 훈련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행 시 조종사는 가속도로 인해, 고도로 인해, 고중력 상태로 인해, 회전 하는 가운데 평행감각을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항공기 조종사의 착시 현상을 버티고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조종사가 되는 과정은 나를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는 훈련입니다. 내 감각, 내 생각조차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 말년에 넘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생활 할 만큼 했으니 본인 생각이 곧 신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성경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면서 성경을 다 아는 경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삶의 여유가 생기고 먹고 살만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듯 하나님을 갈급해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도 바울이 이런 말씀을 그냥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누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고 말씀이 우선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고 성령님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을 의지하는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정화를 위해 늘 훈련하기 바랍니다. 내 영혼에 햇빛이 비치도록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영혼에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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