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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온전히 알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6. 22. 20:55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2014년 6월 22일)

    아모스 5장 4-8절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온전히 알라.

     

     

    가.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종교가 형식화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4-5절).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을 찾으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어서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모두 이스라엘의 종교적 열심을 말해주는 장소입니다.

     

    벧엘은 절망한 야곱이 유숙하다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곳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늘의 문이 열렸다고 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창28:17). 후에 북왕국의 여로보암 1세는 금송아지를 벧엘에 두고 그곳에 중앙성소를 만들었습니다(왕상12:29).

     

    길갈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진 친 곳으로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돌을 세웠고, 새로운 세대에게 할례를 행하였던 역사적 장소였습니다(수4-5장). 또한 브엘세바는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자리였습니다(창22장, 26장, 46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유다 땅 브엘세바까지 순례하며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난 이런 성지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4장 4절을 보면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범죄를 더하고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종교와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죄악을 일삼으며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종교가 형식화된 모습입니다.

     

    나. 엉뚱한 종교적 열심은 멸망으로 끝납니다.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5-7절).

     

    아모스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스라엘이 심판 받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길갈과 벧엘은 더 이상 성지가 아니라 전쟁으로 짓밟히고 폐허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성소에서 열심히 제사 드려도 금송아지 앞에서 드리는 제사는 우상숭배일뿐입니다.

     

    무수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한다고 해도 삶에서 하나님이 증거되지 못하면 그것은 엉뚱한 종교적 열심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찾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없는 삶은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리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배교와 불의의 삶을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불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미리 태울 것을 태우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살 길이 열립니다.

     

    다.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8절).

     

    신앙생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는 삶이 구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심판을 예언하였지만 지금이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실 수 있다는 급박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에서 ‘찾으라’는 ‘하나님을 알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헛된 제사를 드리고도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뻐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동시대 예언자 호세아도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호6:6).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절체절명의 시점에 서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삶의 모든 부분에서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 길이 열립니다. 오는 목요일 우리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을 맞습니다. 이 땅은 아직도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도 더 이상 복음을 헛되게 만들지 말고, 하나님을 제대로 찾아야만 합니다.

     

    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심판을 면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6-7절).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조상들이 하나님을 경험한 신앙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더 이상 그곳을 찾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에 간다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벧엘에 가야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늘 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요4:21). 장소도 형식도 하나님을 만나는 본질적 요소가 아닙니다.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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