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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관점으로 대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6. 30. 10:40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2014년 6월 29일)

    누가복음 6장 6-11절

     

    하나님의 관점으로 대하라.

     

     

    가. 잘못된 가치관이 문제입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6-7절).

     

    안식일에 회당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손 마른 사람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인식합니다. 물론 이 사람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한 손을 쓸 수 없다는 신체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오른 손이 말랐다는 것은 이 사람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 싶은 진짜 문제는 이 손 마른 사람의 질병이 아닙니다. 본문의 진의는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바리새인들의 삐뚤어진 마음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지 엿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 생각에도 예수님이라면 분명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안식일 규례를 어기는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마음을 먹었을까요?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고, 바리새인들이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려고 규례를 더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에 위급한 환자 외에는 치료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그들이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 준수 여부 자체로 경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놓아버렸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사람을 위한 법 준수가 아닌 법을 위한 법 준수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사람 보다 법을 더 중요시 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놓고 말았습니다.

     

    나. 잘못된 가치관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11절).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 사람을 보고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손 마른 사람을 보고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고발하려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하셨습니다. 이와 동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악한 생각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 구석에 있던 손 마른 사람을 한가운데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설교하는 가운데서도 임하여 그를 고치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한가운데로 부르신 것은 손 마른 사람의 인간다움을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악의를 품은 바리새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셨습니다.

     

    본문에서 손 마른 사람을 대하는 상반된 두 가지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치려고 하셨고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일보다 안식일 준수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려는 마음을 처음부터 갖지 못했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 받음을 보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고침을 받았으면 기뻐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들은 고쳐준 예수님에게 분노를 품었습니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을 해할 모의를 하였습니다.

     

    다친 사람을 보면 돕고 싶고, 상처 받은 사람을 보면 위로해 주고 싶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내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사탄같은 마음입니다. 가치관이 잘못 형성되면 선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위험성이 생깁니다.

     

    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8-9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치료 행위를 통해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시145:9).

     

    근본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행복이고 번영입니다. 예레미야 말씀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렘29:11).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신 것은 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는 근본 물음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명을 왜 주셨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법임을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서 나와야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행해야 합니다.

     

    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대할 때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1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사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사람을 대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사람의 사람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이 아픔에서 치유되고,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기쁨을 같이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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