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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합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0. 2. 6. 15:27

    주현절 제4주[20100131]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합시다.(렘 1:4-10)

     

    바벨론의 침략으로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587)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선지자로 부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면이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이 지난 예레미야의 소명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셨다는 의미가 바로 오늘날 교회의 원래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무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에클레시아 즉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택하셨다는 것이 인간 편에서는 부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소명 의식이 중요합니다. 본문 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나님께서 너를 알았고, 너를 거룩하게 구별하였고, 너를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쓰십니다. 내가 실력있고, 내가 잘나서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붙들린 몽당연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시편 90편 2절의 말씀처럼,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이 보는 관점은 우리와 다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모세처럼 대답합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앞서면서 살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 55장 7-8절,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이 우리와 다름을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증거 합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십니다. 아버지 이새조차 막내를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사사기 6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함을 말하는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시며,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 하나님의 요구는 우리의 절대순종입니다.

    오늘 말씀 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것은 “내가 보내는 곳으로 너는 가며, 내가 명령하는 말을 너는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렵습니다. 주님은 가라고 하시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두려운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불순종하고 도망쳤습니다. 두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제자도 사울에게 가라 하실 때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사울이 누굽니까?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돌아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나니아는 말씀에 순종하며 사울에게 가서 사울을 형제라고 부르며 그에게 안수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십니다.

     

    내 생각으로 전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에게 귀에 듣기 좋은 말, 달콤한 위로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개와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인 십자가의 도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이지만 우리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기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말씀에 절대순종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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