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는가?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2. 8. 23:13

    주현절 후 제5주일[20110206]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는가?
    (마 5:17-20)

     

    데이브 키네먼(Dave Kinnaman)과 게이브 라이언스(Gabe Lyons)의 UnChristian이라는 최근 미국의 베스트셀러는 현대 기독교의 이미지를 평가 보고함으로써 주목받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16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하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모습을 가졌고 또한 쉽게 타인을 판단한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외부에서 보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위선적일 뿐만 아니라 정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깊게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 이런 인식이 만연한 것일까요? 한국적인 상황에서 관찰해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이 가르치는 율법과 복음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율법과 복음은 근본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요약이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완전하게 한 것이고,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마치 율법을 폐하기나 하는 것처럼 오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팔복의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팔복 설교를 들은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폐하고 새로운 율법을 전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고,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었다는 이유로 예수가 율법을 폐지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수님 가르침의 요체를 담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의미부터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의 ‘완전하게 하다’라는 ‘플레로사이’의 뜻은 ‘채우다, 충만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후 우리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의 의미를 충만하게 채우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죽여야만 살인한 것이 아니라 노하고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고, 행위로 하는 간음만 간음이 아니라 마음과 눈으로도 간음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완전히 지킨다는 것은 형제와 대적하는 길이 아닌 형제와 화해하는 길을 택하라는 것이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완전한 의미는 결혼하며 산다는 것은 함께 온전함의 길로 가는 기회로 삼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사회법을 준수하면 질서는 유지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이 되려면 단순히 질서 유지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세금 잘 내면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고통 받는 자를 위해 나의 것을 나누어주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으로 십일조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내가 가진 열 모두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는 것이 십일조의 온전한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르침의 의미를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기준에 이만하면 되겠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율법이란 없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것 그 한 가지를 채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율법의 완전한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제자들이 누가 천국에서 큰 자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의 답변은 작은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작은 계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명을 다 지켜 행하며 그같이 가르치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기 때문에 율법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지키려고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문자적인 계명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지키라고 강조하십니다. 한 계명, 한 계명의 뜻을 완전히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도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했습니다(롬 7:12).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한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그 뿌리를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두 가지를 설명하시는데,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는 19절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또는 천국에서 크다’라고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20절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해설하기를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란 하나님의 계명을 잘못 이해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못 이해하는 자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데, 이 두 부류의 사람이 같은 하늘 나라의 운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계명 하나라도 어기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가장 작은 자로 내쳐진 자요, 말째가 되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모든 계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믿고(딤후 3:16),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 본문을 묵상하며 이단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단이 눈에 쉽게 띄면 이단이겠습니까? 눈에 띄지 않는 이단이 더 많습니다. 그것은 말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간판을 버젓이 걸어 놓고 강단에서는 ‘오직 말씀’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교회를 사유화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한국에 교회 수가 많다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으면서 계명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성경을 강해하지만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고, 계명을 가르치지만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호로 내걸지만 모든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는 목회자들을 보고 사탄은 웃고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들어갑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20절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계명을 지키는 목적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보다 인간의 칭찬과 세상의 영광을 받고자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는 인간의 칭찬과 세상의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하며 가르치는 삶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의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는가?’ 입니다. 19절의 ‘천국에서 큰 자, 작은 자’의 의미는 계명을 버리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되 작은 자의 위치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적 한계 속에 연약함, 무지, 실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위선적이고,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인의 의가 아닌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의로 살아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본 ‘천국에서 큰 자 또는 작은 자’의 의미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와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18절의 예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 한 획'은 사실 예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 문자적으로 '한 자 한 획'은 ‘이오타, 요드’를 뜻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이오타’로 시작하고, 히브리어로는 ‘요드’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율법 안의 하나님의 말씀이 되십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요 14:6).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제자들처럼 똑같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은 우리 힘으로는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힘으로 살다보면 실패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포기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비록 계명을 지켜 행하는 일에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되라. 그런데 그것을 너희 힘으로 하려고 하면 바리새인처럼 되기 쉬우니,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 나를 믿어야 율법을 완전히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온 이유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양식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요 6:48).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말씀대로 행할 에너지를 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생명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요 14:12)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