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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영적 자녀를 낳읍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5. 5. 00:38

    부활절 둘째 주일/어린이 주일[20110501]

     

    하나님의 영적 자녀를 낳읍시다.(삼상 1:19-28)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지키며 부모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겠습니다.(엡 6:4)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믿는 자를 통해 새 창조를 이루고 계시며, 종국 만물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롬 11:36)

    온 우주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계시이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영적 어두움에 갇힌 사람들은 왜곡된 영혼의 기능으로 인해 빛이 없으면 진리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그분이 우리를 어둠에서 구원해주시고, 혼돈과 공허한 영혼들에게 질서와 생명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적 어두움이 걷히고 빛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 옛날 출애굽 사건이 성경 속에 있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이 마치 출애굽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1장 2절을 보면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엘가나가 한 번에 두 아내를 얻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나에게 자식이 없자 브닌나를 얻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브닌나’라는 이름에 ‘다산’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자녀를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두 번째 부인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1장 4절 이하입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엘가나나 한나를 브닌나 보다 사랑하니 브닌나로서는 질투 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고, 남편의 사랑도 자신 보다 더 받는 한나를 점점 미워하였고 말로도 그녀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삼상 1:6)

    물론 브닌나로 인해 한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오죽하면 6절에 브닌나를 ‘적수’라는 표현까지 썼겠습니까? 한나는 실로에서 통곡하며 여호와께 서원 기도를 합니다.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절)

    성경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나가 서원 기도하여, 하나님이 한나의 태를 여시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얻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봅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었지만 기도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기도하면 자녀를 얻는다 또는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기도 응답 받았다’ 라고 본문의 의미를 한정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본문은 한나처럼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불임 상태가 되어 영혼을 잉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씨가 하나님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씨인 내가 영적으로 발아되고 성장해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씨로 이 땅에 왔으나 발아되지 못하고 죽은 씨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종말에 알곡은 천국에 가고, 쭉정이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 3:12)

    브닌나처럼 자녀가 여러 명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잉태되지 않은 자녀는 오히려 집안 원수가 될 뿐입니다.(마 10:36)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길에 사탄은 눈에 보이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도 있고, 내 안에도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 내 영적인 태를 열어 복음으로 영혼을 낳게 해 주시옵소서. 내 자녀가 태어나서 온전하게 성장하고 열매 맺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많은 기도 제목을 갖고 오랜 세월 기도했다고 하지만 나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열매 맺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하는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녀가 복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성장하고, 알곡으로 천국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영혼을 낳았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 받길 원하시며 성령 세례로 거듭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5) 즉 이 말씀은 우리가 영혼을 낳고 영혼을 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날마다 새 창조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의 아비가 아닌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울며 매달릴 때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19절)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놀라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씨로 뿌려졌음을 기억하며,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로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으로 자녀를 낳고, 자녀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잘 돌보고, 길러야 하겠습니다.(시 127:3)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영혼의 자녀를 계속 낳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고 날마다 경험되어지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없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충만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요 10:10)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넘칠 때 비로소 생명이 잉태되고, 생명이 자라나고, 그 영혼이 충만케, 완전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는 작동이 안됩니다. 처음 아담은 하나님의 원의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영혼의 기능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후 인간의 영혼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향할 수 없게 되었고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영혼은 악에 붙들려 있든지 선에 붙들려있는지 끊임없는 자신의 선택 가운데 서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것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맞지만 그 이면에 근본 원인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제 기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것은 자력이 아니고 전적으로 타력입니다. 사탄의 수하에 머무르든, 하나님께 순종하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는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미약하나마 자유 의지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아버지의 집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난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으나 생각이 이미 먼 나라로 향해있던 아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몸까지 고생하고, 가진 것을 다 잃은 후에 비로소 생각한 것이 아버지 집 아니었습니까?

    내가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내 의지, 내 정욕, 내 욕망, 내 야망이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잉태되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는 세례라는 값비싼 대가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아무나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 안에 예수 생명이 충만한 사람은 양심이 살아나고, 의에 대하여, 완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려 주시는 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은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시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스도까지 증거하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나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구나... 누가 나를 죽음으로 빠져 들어가는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가?”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비록 그 안에 선도 있고 악도 있어 싸우지만 성령님은 붙드시고 자유케하는 힘을 주신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성령님이 붙드시는 힘이 있으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라는 말입니다. 내가 살고 나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인생들을 구원할 메시지를 달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일입니다. 자녀를 여러 명 낳으면 뭐합니까? 마귀의 자녀만 줄줄이 낳으면 뭐합니까? 한나의 기도, 그것은 영적 불임의 상태인 오늘날의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려 태를 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영혼의 태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영에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로 뿌리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게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적 자녀를 낳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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