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4. 19. 05:00

    부활절 셋째 주일(2015년 4월 19일)

    아모스 5장 21-27절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라.

     

     

    가. 예배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21-23절).

     

    본문은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만 열심히 드리면 신앙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착각하고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화 있을 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라고 일갈하였습니다(암5:18).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날을 구원의 날, 승리의 날로 고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불의를 행하면서도 구원 받기를 바라는 악한 백성들에게 그 날은 너희에게 어둠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날이 왜 심판의 날이 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한 내용이 본문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예배를 더 이상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끊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공허한 예배를 계속해서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려라”라고 하시면 그것은 예배를 받으시겠다는 뜻입니다(욜2:14). 그러나 “예배 그만 드려라”라고 하시는 것은 안 받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예배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예배 열심히 드린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위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마23:23).

     

    나. 예배의 은혜가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2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광야 시절에 제대로 예배 드려본 적이 있느냐?”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즉 그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기간 동안 예배드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제사 제도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론이 시내산에 머물 때 첫 해만 행해졌지 그 이후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레9장).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묻고자 하신 진의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예배드리지 않았어도 내가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택하셨기 때문에 지켜주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언약을 깨고 불순종한 백성은 광야에서도 다 망했습니다. 광야에서는 예배가 아니라 순종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조건이었습니다(렘7:23).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15:22). 이는 예배가 삶 가운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가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와 함께 거룩한 삶을 원하십니다. 예배에서의 은혜가 삶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의로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뻐하십니다.

     

    다.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24절).

     

    본문의 메시지는 단지 예배 잘 드리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라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배 안드려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모스서는 예배와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한 예배는 종교적 위선을 낳았고 이는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결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본문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정의와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흐르다’(가랄)는 ‘굽이쳐 내려가다’는 뜻입니다. 마치 물결이 굽이치며 흘러 구석구석에까지 미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입니다. 정의와 공평이 우리 삶에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강’은 어원이 ‘나할’에서 나왔는데 ‘소유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큰물이 흐르면 그 땅을 완전히 뒤덮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미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가득하게 하라는 선포입니다.

     

    아모스가 외친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6:33).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회개하고 의를 회복해야 진정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라.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26-27절).

     

    본문에서 아모스가 대언하는 마지막 외침은 불의가 판치는 이런 모습으로 구원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그리고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 같지만 사실은 다 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료형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장차 일어날 심판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일어난 일로 단정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불의를 행한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 다가올 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하겠습니다(고후6:1).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님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