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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5. 19. 10:08

    삼위일체주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출 20:7)

     

    1. 거룩한 이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법인 십계명 가운데 오늘은 세 번째 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유대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불경건하다하여,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토라를 대하며, 하나님을 뜻하는 야웨라는 단어가 나오면 야웨로 읽지 않고, “주님”이라는 “아도나이”로 바꾸어 읽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필사하는 사람은 토라를 옮겨 쓰다가도 야웨라는 단어가 나오면 쓰던 붓을 다시 빨고, 경건한 마음으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자음 네 자 YHWH를 필사하였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니, 하나님에게 이름이 있기라도 한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에게 이름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처음 인류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자신을 소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 말은 인간 아담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름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자신의 짝의 이름을 불렀고(창 2:23), 각종 생물의 이름을 불렀다(창 2:19)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말인 “하나님”이라는 말도 “유일하신 분”이라는 뜻이며,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신의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무슨 이름이 있어서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대화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영안은 어두워지고 육안이 밝아졌을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결과적으로 아담과 아담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아는 본성도 둔감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지, 아브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출애굽 하라고 하시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여쭈어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이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하였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곧 하나님은 “나는 나다!”라고 자신을 밝히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실상 이것조차 하나님의 이름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모든 존재, 역사의 근원이 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스스로 존재하셨고, 존재하시고, 존재하실 분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근원이 있어, 종속적이고, 유한하며, 의존적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말라.

    십계명 제3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허용하신 귀한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 조차 허용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 말씀의 의미는 참 하나님을 알고, 참 하나님을 찾고, 참 하나님만을 부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는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망령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허용하지 않으신 것이고, 하나님은 이것을 죄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경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망령되다”(shav)라는 뜻에는 “헛되다”(in vain, useless)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리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 맙소사”, “아버지”라고 입에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아무런 의미 없이 헛되게 부르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농담(silly banter)을 하거나 희롱을 하는 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는 경우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금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이용하면서 거짓되고, 헛된 맹세를 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레 19:12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또한 약 5:12에,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지 말라.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경우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악용하는 경우입니다. 선교 사업을 한다느니, 성경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영리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경우가 됩니다.

     

    요즘 국민일보 등 기독교 미디어를 보면, 하나님 사업과 관련해서 많은 광고가 난무합니다. 때로는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도 많지만, 대부분은 기독교란 이름으로 돈벌이에 급급한 사업, 각종 전도 세미나란 이름의 돈벌이 사업, 신학교 사업 유지를 위한 광고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국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귀하신 이름을 남용하는 사례입니다.

     

    5. 하나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

    세 번째로 하나님을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경우는 우리가 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에 누(desolating)를 끼치는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며, 사회질서를 어기는 행위라든지, 돈과 사람을 다루는 일에서 진실하게 살지 못한다면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이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내가 잘못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 안다니는 아이가 공부 못하면, 그냥 못한다고 하지만, 교회 다니는 아이가 공부 못하면, “교회 다니면서 공부도 못하네”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운동선수 중에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하는 운동선수가 페어 플레이를 안하면, 하나님이 욕먹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계명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가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엡 2:10).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헛되게 부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김 아무개, 이 아무개로 불리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고유한 이름을 주십니다. 아브람을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 부르셨고, 사래를 “여주인”이라 칭하셨고, 시몬을 “바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신 이유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딛 2:14).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선행 곧 사람을 살리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삶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예수님 믿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기 때문에 공부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진 재물과 재능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입니다(시 29:2).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20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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