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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7. 22. 17:46

     

    성령강림절 후 아홉째 주일[20130721]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

    열왕기상 3장 16~28절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이 많은 랍비가 급히 돈이 필요해서 같은 마을에 사는 두 사람에게 3개월만 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서 200세겔을 빌렸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100세겔을 빌렸습니다.

     

    3개월이 지나 랍비가 돈을 갚으려고 하는데 누구에게 200세겔을 빌리고 누구에게 100세겔을 빌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누가 나에게 200세겔을 빌려주었는지 물었더니 이때 100세겔 빌려준 사람이 랍비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자기가 200세겔 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200세겔을 빌려주었다고 하니까 랍비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랍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둘 다 100세겔씩을 돌려주고 나머지 100세겔은 재판장에게 맡기라고 말합니다.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그 랍비는 다른 랍비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다른 랍비는 그렇게 하면 200세겔 빌려준 사람이 억울하기 때문에 그러지 말고 두 사람 모두에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300세겔을 재판장에게 맡기라고 알려줍니다.

     

    며칠이 지나자 거짓말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러다간 자기가 빌려준 돈 100세겔마저 받지 못하게 될 것 같자 랍비를 찾아와 말합니다. “랍비님, 장부를 보았더니 제가 100세겔을 빌려드렸더군요. 저에게 100세겔을 주시지요.” 그러자 랍비는 그 사람이 처음부터 거짓말 한 것을 알고 재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판결을 부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 역시 두 사람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솔로몬은 산 아이의 진짜 엄마가 누군지를 가려내는 지혜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꿈에 하나님을 뵈었을 때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왕상 3:9). 솔로몬은 하나님의 주신 이 지혜로 산 아이의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구별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있었던 솔로몬의 재판이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째. 인간의 지혜는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20절입니다. 진짜 엄마가 말합니다.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였나이다.”

     

    인간의 생각은 선보다는 악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마15:19)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를 바꿔치기 한 사건은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일이었습니다(18절). 실제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이 안 되면 얼굴을 분간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 엄마는 자기 아이가 누군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집에는 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17절).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속이고 거짓말로 버티면 증거를 찾기란 힘듭니다. 인간에게 나오는 지혜의 수준이 이렇게 사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자기의 생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잔꾀일 뿐입니다. 이러한 잔꾀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수준이고 한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이 너희와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사55: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고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의존적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생각이 올바르지 못합니다.

     

    둘째. 속임수와 거짓말은 죄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17절에 보면 두 여자는 한 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두 사람은 창기였으나 한 집에 살고 있을 정도로 둘은 서로 의존하는 사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관계에서 한 여인이 자신의 아이가 죽자 친구의 산 아이와 바꾸는 속임수로 결국 둘 사이는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고 맙니다.

     

    22절입니다.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쟁론하는지라.”

     

    사람의 속임수와 거짓말은 친구 사이인 둘을 원수가 되게 만들고 진실 공방으로 다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라는 수준이 가져오는 한계이고 문제점입니다. 사람의 잔꾀가 한두 번 먹혀들어 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알고 의도를 헤아리는 분이십니다(삼상16:7). 남을 속이고 탐심을 부리고 시기 질투하고 분노하여 죄를 지으면 그런 일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야곱은 그 이름이 ‘술수부리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기도를 가로챘고, 재주를 부려 외삼촌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형과 원수가 되고 외삼촌과도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에게 짓는 죄가 곧 하나님께 짓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악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관계를 단절시킵니다(사59:2).

     

    셋째. 하나님의 지혜만이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냅니다.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24-25절)

     

    솔로몬은 창기의 사정을 듣고 지혜롭게 재판함으로써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라고 하였지만 여기에 쓰인 칼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칼이 누구의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고 죽이고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칼로 잘못된 심판을 저지를 수 있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칼을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와 판결을 맡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따라 사람들의 손에 들린 돌은 정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정죄와 심판의 도구인 돌을 용서와 구원의 도구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지혜는 공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의란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간에, 교회 안에, 교단 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28절,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니라.”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로 올바른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곳에는 진리가 드러나고, 억울함이 없게 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로 증거도 없는 어려운 재판을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는 기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람의 일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화려한 행사를 하고 거창한 대회로 모이는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생각과 말과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롬12:2)이 드러나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은 증거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살면 반드시 문제에 봉착합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속이게 되고 불의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약3:1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부름 받은 자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역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일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살면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고 당장은 유익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이 곧 의로움이고 거룩함이고 구원이 됩니다(고전1:30). 하나님의 지혜로 연합하며 살면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시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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