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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임재 의식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8. 7. 00:35

    성령강림절 후 열째 주일[20120805]

     

    하나님 임재 의식(삼하 11:1~15)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서, 열왕기서의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 역대기서에는 이 사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역대기서가 기록된 주목적은 포로 귀환 시기에 다윗 시대의 삶의 원리를 소개함으로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신명기에서 계속 이어지는 역사서로 신명기적 사관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셰마 이스라엘' 다시 말해 '들으라 이스라엘아'라고 하며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신명기적 역사서의 주제입니다.

     

    신명기 사관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11장 27절을 보면 다윗과 밧세바 사건을 이 관점에서 한 마디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겐 하나님의 법이 주어졌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다윗의 범죄를 밝히고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이 여자 하나 부르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는 고대 사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사무엘서 가운데 하나의 사료로 남겨 오늘날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의 위치에서 세상 법으로 무마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법은 당사자의 신분이 왕이든 비천한 자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저질렀고(레 20:10),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출 21:14) 고의로, 악의로 죽인 것도 하나님의 법으로는 살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지만 십계명 6계명과 7계명을 어겼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 전체적으로 다윗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합니다.(행 13:22)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문으로 소개하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다윗의 혈통을 잇고 있습니다.(마 1:17)

     

    실제 다윗은 용모가 준수했을 뿐만 아니라 골리앗을 물리칠 정도로 하나님을 깊이 의지했고 용맹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에도 사울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는 부끄러운 모습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다윗,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를 다윗, 다윗 한 사람의 두 가지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두 가지 모습 그것은 다윗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여 천사 같던 사람도 악마의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라는 고백이 바울만의 고뇌는 아닐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으로 인한 다윗의 심정은 시편 32편과 51편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 32편 4절에서 다윗은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또한 시편 51편에서는 다윗의 간절한 회개가 토설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성경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쓰임 받은 위대한 인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쓰셔서 대적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시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다윗에게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전의 설계도도 직접 계시해 주셨습니다.(대상 28:19)

     

    그런 다윗이 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11장 1절과 2절에서의 분위기는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전장에 있는데 다윗은 왕궁에 있었습니다. 1절에서 전쟁의 긴장감이 보인다면 2절은 너무나 여유로워 보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전쟁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위해 기도 중에 있어야 할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선이 머문 곳은 목욕하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였던 다윗이었지만 한 순간에 이 여인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흐트러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의 고백을 통해 이때의 자신의 죄악을 눈물로 뉘우치고 회개하지만 오늘 본문은 다윗의 죄과를 숨김없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임재 의식의 중요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던 다윗이었지만 한 순간의 유혹이 하나님을 잊게 하였습니다.

     

    죄의 유혹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는 빈틈을 노립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얼마든지 죄를 짓기 쉽습니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길은 하나님의 임재 의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에 계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생각을 신앙으로 착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딘가에 계시다는 사실을 막연히 믿는 것과 하나님 임재 의식 가운데 사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편 14편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시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고백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어리석은 짓, 가증한 짓을 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얼마든지 죄를 짓기 쉽습니다. 오늘날의 뉴스거리도 간음, 살인 사건은 여전히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위대한 왕의 치욕적인 특종 뉴스를 고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본문의 이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현존 속에 계속해서 머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임재 의식으로 사는 사람만이 죄를 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속 머물러 계시기를 구하며 승리하는 날들이 되기를 원합니다.(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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