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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사는 길을 택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8. 9. 11:00

    성령강림후 열한째 주일(2015년 8월 7일)

    창세기 13장 5-11절

     

    함께 사는 길을 택하라.

     

     

    가. 풍요해질수록 다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5-7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조카 롯도 함께 갔습니다(창12:4). 아브라함은 동생 하란이 먼저 죽은 뒤 조카 롯을 자식처럼 데리고 다니며 키웠습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일행이 애굽에서 올라와 벧엘 근처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흘러 조카 롯도 자신의 소유와 목자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5절에 보면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과도 같습니다.

     

    사실 롯의 소유는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얻게 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의 소유가 많아 동거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언뜻 물질이 풍요로우면 잘 살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6절에 ‘동거하다’(야하드)는 ‘하나 되다’는 뜻입니다. 같이 산다고 동거가 아니라 진정한 동거는 마음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풍요로워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한다면 다툼만 일어나기 쉬울 뿐입니다.

     

    나. ‘나만 살면 그만이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8절).

     

    아무리 물질이 풍요로워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면 같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선택한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친족’이라는 말 속에는 ‘한 형제, 한 백성’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살면 그만이다’는 식의 이기주의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서로를 죽이는 길입니다. 바울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엡4:25). 우리는 한 몸입니다. 나만 살겠다는 생각은 사탄적인 생각입니다.

     

    다.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절).

     

    아브라함은 서로가 다투지 않고 함께 살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좌와 우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좋은 땅과 그렇지 못한 땅의 대조입니다. 사실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아브라함에게 있었지만 어린 조카를 배려하고 양보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갔고(창12:1), 내 이익을 생각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위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고전13:5).

     

    이것이 아브라함이 보여준 어른의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어른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유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배려하고 공동체 모두를 위해 양보하는 정신으로 살 것을 가르치십니다.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레19:9-10).

     

    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1절).

     

    사실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양보했으면 롯은 아브라함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말해야 인간된 도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지금까지 키워준 큰아버지의 마음도 망각한 채 자신이 살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롯은 물이 넉넉하고 살기 좋아 보이는 요단 지역을 선택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13절에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는 말에서 눈에 보이는 살기 좋은 환경이 결코 좋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고 떠났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소돔이 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포로가 되었을 때에 롯도 재물을 빼앗기고 끌려갔습니다(창14:12). 그리고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롯은 모든 것을 잃고 가족들만 간신히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도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창15:29).

     

    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로하시고 새롭게 언약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14-15절). 아브라함은 배려와 양보로 많은 것을 잃은 듯 보였지만 나중에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고 갚아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는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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