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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롯의 잔치상과 예수님의 잔치상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9. 17. 10:33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번째 주일[20080914]

     

    헤롯의 잔치상과 예수님의 잔치상
    (막 6:14-44)

     

    1. 마가복음 6장의 여러 가지 이야기

    마가복음 6장은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땐 두서없는 이야기 같지만 마가의 치밀한 구성과 의도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6장의 처음은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고, 육신의 가족조차 믿지 않음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6절). 예수님의 고향 방문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음을 전하고 있습니다(5절). 대조적으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13절).

     

    이 이야기 다음으로 30절의 내용이 와야 하는데, 중간에 14절에서 29절 사이에 세례 요한의 죽음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 이야기를 오병이어 사건 이야기 앞에 배치한 것에는 마가의 의도가 있습니다. 이 시간 세례 요한의 죽음 이야기와 오병이어 사건 이야기를 비교 대조해 봄으로 두 본문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세례 요한 이야기

    세례 요한은 헤롯의 생일날 희생되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에서 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이름은 파송받은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자 전에 자신이 목을 벤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었습니다. 이로 인해 헤롯은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 죄책감에 떨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두려워 떨었던 까닭은 전에 저지른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이웃 나라 아레타스 4세의 딸을 버리고, 헤로디아와 재혼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18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의 결합이 율법을 범하고, 부정한 일이라 고발하였습니다.

     

    레위기 18장 16절을 보면,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레위기 20장 21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라고 경고합니다. 헤롯은 근친상간의 불결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고자 틈을 보았습니다. 헤롯도 요한에 대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자신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요한을 어떻게든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을 죽일 기회를 찾고 있던 헤로디아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헤롯의 생일잔치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대신들, 천부장들, 갈릴리의 귀인들 등 그 지역의 권세있는 자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21절).

     

    헤로디아의 딸은 전 남편 빌립에게서 낳은 딸로, 살로메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잔치에는 하층 계급의 여인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을 시켜 왕과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의도적으로 딸을 통해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작전은 성공했고, 살로메는 어머니의 지시를 받아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기에 이릅니다(24절).

     

    3. 오병이어 이야기

    이 이야기 다음으로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이 나옵니다. 30절은 13절에서 이어집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선교 여행을 떠났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자신들의 사역에 대해 보고를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계속되는 사역으로 인해 쉬고자 하셨지만 몰려오는 사람들로 예수님은 쉴 여유를 찾기 힘들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으시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세울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민 27:17). 구약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즉 목자 없는 양이란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광야에서 목자 잃은 양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언제 들짐승의 밥이 될지 모르는 상태인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유리하는 양과 같은 인생은 마귀의 밥이 되기 십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시며 가슴 아파하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4. 두 이야기의 대비를 통한 메시지

    오병이어의 기적은 제자들이 보기에는 턱도 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예수님께 맡길 때(41절) 놀라운 결과가 일어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앞서 살펴본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해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을 앞뒤로 배치시킨 것은 헤롯이 베푸는 잔치와 예수님이 베푸는 잔치의 차이를 부각시키려 하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헤롯이 베푼 왕궁의 연회와 예수님이 베푸신 광야의 연회를 인위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전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후자는 예수님의 통치 하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연회를 우리에게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상의 왕 헤롯과 이스라엘의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대조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헤롯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대신들, 천부장들, 귀인들이었지만, 예수님이 베푸신 광야의 식탁에는 예수님께 나아온 모든 사람이 참여하였고, 그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왕궁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초대하신 잔치상은 빈들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대조는 아무리 세상의 잔치가 화려해도 예수님이 없는 곳은 생명이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리가 진정한 천국 잔치 자리입니다.

     

    추석을 맞아 우리는 오곡백과와 조상의 은혜를 감사하며,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우리가 모인 곳이 헤롯의 잔치상입니까? 예수님의 잔치상입니까? 아무리 화려한 잔치상이라도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헤롯의 잔치상이요, 생명력 없는 요란한 시장 바닥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비록 빈들일지라도 주님이 계신 곳이어야만 그곳에 생명이 살아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천국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잔치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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