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회개한 만큼 이루어지는 천국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 8. 04:04


    주현절 후 첫째 주일[20120108]

    회개한 만큼 이루어지는 천국

    (마 4:12-17)


    십이 일 간의 성탄절기가 지나고 1월 6일인 지난 금요일 주현절을 맞았습니다. 오늘은 주현절 후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절기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주현절기에 많이 상기하는 복음서 본문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는 본문,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는 본문,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 본문입니다. 이 세 가지 본문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신성(신격)이 드러나는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이 이방인들에게 드러나는 사건이고, 예수님의 세례 받으시는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이 유대인들에게 드러나는 본문,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신성이 제자들에게 드러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력의 본문들은 신자들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구원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형성되어진 교회의 전통입니다.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어 오묘하고 신비한 말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력의 전통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시작으로 새로운 한 해 신앙의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주현절의 신비는 하나님의 빛이 무엇을 계시하는지 깨달을 때 드러납니다. 이 시간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빛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고,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고 그것을 말씀으로 물리치고 이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다음에 나오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이기시고 나서 바로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메시지가 반복하여 숨겨져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또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이 되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행동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순간순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9절 말씀입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친히 나에게 명령해 주셨다.”(새번역)

    우리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때를 아는 지혜를 얻길 소망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전 3:1)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지혜인 줄 믿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행동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토라를 통해 주어진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때와 뜻에 따라 행동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였듯이, 우리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올 한 해 말씀의 세계가 열리고, 말씀이 살아서 나에게 역사하는 시간들이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치유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고(행 10:38), 회복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고(엡 3:16), 능력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원합니다.(고전 2:4)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마태는 본문에서 이사야 9장의 말씀이 예수에게서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5-16)

    여기서 말하는 큰 빛은 이방인에게도 비추는 구원의 빛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이사야 9장의 이 말씀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석하고 “이 때부터 비로소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4:17)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흑암과 사망에서 빛을 보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지금 큰 빛이 이방 땅에 비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구원의 빛이 비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그동안 흑암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흑암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영적 어둠의 땅입니다.

    또한 사망의 땅은 죄가 가득 찬 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망의 그늘은 무엇이 죄인지도 모른 채 함부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죄가 만연한 땅입니다. 힘 있는 소수가 권력을 잡고 지배하는 땅입니다. 그리하여 인권이 유린당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되어도 권력의 그늘에 가려 신음 소리가 묻혀버린 땅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제 예수님이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자체가 복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사건은 이것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셨으니 회개하고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가 이것을 잘 말해줍니다. 아버지는 조건이 없으셨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셨습니다. 돌아오니 환대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무슨 조건을 걸고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비치는 구원의 큰 빛은 무조건적인 용서의 빛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용서하셨다는데 회개는 왜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런 의문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여기서 분명히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빛을 본 것은 빛과의 만남이요, 빛 가운데 거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말씀해주는 분이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말하기를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요일 2:9)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빛 가운데 살지 않으면서도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삭개오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러 여리고로 찾아오신 것입니다.(눅 19:1)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삭개오를 불러주셨습니다. 누가는 기록하길 이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하였습니다.(눅 19:6)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문 듣고 예수님 믿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일(요일 1:1)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습니다. 아니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지성과 감성과 본성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어둠에서 헤매던 길을 버리고, 진리이신 예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망의 생각을 버리고 생명이신 예수의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만한 지성이 겸손으로, 육적인 감성이 사랑의 성품으로, 육적인 본성이 영적인 감각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회개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이 오해했습니다. 내 안에 빛도 없는데 구원 받았다고 착각했습니다. 내 안에 천국도 없는데 회개했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회개는 일시적이 아닙니다. 단번에 거룩해질 수 없듯이 회개도 믿음 안에서 계속되어야만 합니다.(막 1:15) 회개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물론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교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회개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큰 빛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 비추어진다는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자신으로 인해 성취되었고, 이것이 곧 천국이 도래한 사건임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여서, 우리가 회개하는 만큼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복음이 진정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복음은 교리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롬 1:16) 복음은 흑암 속에서, 사망의 그늘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출해 주시는 구원의 빛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빛 가운데로 걷는 길이 회개입니다.

    회개한 만큼 삶이 변합니다. 회개한 만큼 천국이 내 안에 이루어집니다. 회개한 만큼 빛 되신 예수님을 내 삶으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주현절 첫째 주일을 맞는 이 아침에 마음에 깊이 되새기게 되길 바랍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