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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개해야 천국에 갑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6. 27. 18:09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20110626]

    회개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눅 16:19-31)


    전국적으로 장마 비가 내리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물바다가 되어서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물도 사람을 살리는 물이 있고, 죽이는 물이 있음을 봅니다. 사람을 살리는 물은 죄를 씻기는 물이고(막 1:4), 목마른 자를 구원하는 물입니다.(계 21:6) 또한 성경은 심판의 물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창 6:17)


    오늘 본문에는 불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불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죄를 태우는 불이 있고, 대적을 물리치는 능력의 불(왕상 18:38), 하나님 임재 상징의 불이 있습니다.(창 15:17, 행 2:3) 한편 오늘 본문에서처럼 심판의 불, 지옥의 불이 있습니다.(마 13:42, 눅 16:24, 계 21:8)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앞의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를 하셨는데, 세상의 재물을 옳게 쓰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연결해서 보면 부자는 돈이 많아서 지옥가고, 나사로는 단지 가난해서 천국 갔다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실 때 들었던 사람들이 누굽니까? 누가복음 16장 14절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이어서 16절을 보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가졌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예수님의 말씀에 찬성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두 가지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당연히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공동번역)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분명한 증거로 인식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꾸십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질적인 축복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표시도 아니고, 의인의 증거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물질의 많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축복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임금이나 귀족이 입을 수 있는 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반면 나사로라는 거지는 그 부자의 대문에서 혹시나 버려지는 음식 찌꺼기라도 있으면 허기를 채우려하는데, 힘도 없어 쓰러진 채로 있었고, 피부에 병도 앓아 개가 핥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날에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요.”(히 9:27)라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반드시 육적인 죽음을 한 번 당하는데 부자와 나사로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죽은 것입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


    나사로는 죽었는데 천사들의 인도함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 곧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다른 설명 없이 죽어서 사람들에 의해 장사되었다고만 했습니다. 땅에 묻힌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죽어서 땅 속에 있다는 것인데, 지구라는 땅 덩어리의 구조를 알면 재미있습니다. 지구는 두께가 35km나 되는 지각 밑에 두께 약 2,900km의 맨틀이 있고, 그 속에 두께 약 3,470km의 핵이라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맨틀이 시작되는 부분의 온도는 1,000℃나 되고, 놀라지 마십시오. 중심 핵의 온도는 무려 6,000℃나 됩니다. 지옥이 딴 곳이 아닙니다. 그 영혼이 땅 속에 갇혔다는 것이 뜨거운 불속에 있다는 것입니다.(욥 28:5)


    여하튼 부자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 받고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있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물 한 컵도 아니고 물 한 방울이라도 자비를 베풀 수 없겠느냐고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은 불덩어리로 그 영혼이 고통을 당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있다고 했는데, 그 고통을 말로 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과 천국은 큰 간격이 놓여 있기 때문에 건너 갈수도 올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한 번 정해진 죽음 후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옥에는 더 이상의 자비가 없습니다. 이것이 지옥의 실상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사실 유대인으로서 가난한 자에 관한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신 15:11) 유대인의 율법으로 부가 있는 자에게는 가난한 자를 돌볼 자비가 요구되었고, 그것이 의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유대인 부자는 자신이 지옥에 있는 것에 대한 항변도 하지 못할 상황입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부자라고해서 지옥가고, 거지라고 천국 간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기준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안믿으면 지옥 갑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표현을 쓸 수 없습니다. 아직 예수가 누구인지 세상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확히 무슨 기준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 것입니까?


    사실 기준은 간단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죽어도 믿지 못할까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죽으면 끝이지 죽고 나서 천국 간들 지옥 간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은 오직 이 땅에 사는 동안 잘 사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될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매 순간 고백하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세상의 물질이 목표가 아닌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드시며 등장 인물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언급하는 예는 드문데, 거지의 이름이 나사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나사로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별 볼일 없는 거지, 사람들의 관심 밖인 거지였지만 천국의 기준은 그 사람의 외모(롬 2:11), 신분, 부의 정도가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천국이 들어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반면 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배부르고 등 따듯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생각은 언제나 육신에 속한 것에, 땅의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롬 8:6)라고 한 것처럼, 결국 이 사람은 육신의 일만 즐기다가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은 다 일시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것”(요일 2:17)일뿐입니다.


    본문은 지옥이 어떤 곳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상대적으로 천국에 대해서는 설명이 한두 마디밖에는 없는데, 천국은 “아브라함의 품”이고 “위로받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21:17) 이 땅에서의 고생과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면 고난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지옥에는 더 이상의 자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하시며 세상 끝 날 악인들을 갈라내신다고 했는데, 악인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50) 하셨습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이를 가는 이유는 죽기 전에 왜 나에게는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냐고 하는 분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이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한 방울의 자비도 더 이상 지옥에서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부탁해봅니다.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증언하게 하여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거절당합니다. 거절하며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또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절) 여러분, 지옥에는 더 이상의 자비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회개의 기회는 오직 죽기 전까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비유의 결론입니다. 부자는 지옥의 실상을 알리면 비록 자기는 구원 받지 못했지만 자기 형제들이라도 회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30절), 회개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이미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래 살면 더 회개할 시간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선행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들에게도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먼저 믿은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복음의 증인이 되어, 아직도 죽음 이후를 모르고 육신의 만족으로만 사는 사람들,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행함이 없이 본인도 지옥으로 향하고 주변 사람들도 지옥으로 이끄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습니다. 천국의 삶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삶의 방향 전환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삶은 변하지 않은채 입으로만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세상의 정욕도 지나갑니다.(요일 2:17) 육신대로 살면 죽음으로 끝나고 맙니다.(롬 8:13)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 천국에 갑니다.(암 5:6) 진정으로 회개한 영혼에 구원이 임하고, 천국의 길이 열립니다.(눅 19:9)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요일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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