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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는 야곱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3. 19. 21:10

    사순절 첫째 주일[20110313]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는 야곱
    (창 32:24-32)


    오늘 본문은 얍복강 나루터에 혼자 남아있는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야곱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요?


    지금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하러 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32장 3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창세기 25장에 보면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 안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태어나면서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다 하여 이름을 야곱이라 부릅니다. 사실 야곱의 이름 ‘발뒤꿈치를 잡다’는 ‘속이는 자, 술수부리는 자’라는 그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일생일대의 사기꾼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발뒤꿈치 잡은 자’는 크면서 형 에서의 장자권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루는 들에서 사냥하다 돌아온 에서가 그날은 잡은 동물도 없고, 죽을 정도로 배가 고픈 나머지 야곱에게 떡과 팥죽을 달라고 합니다. 야곱이 자기에게 장자권을 팔라고 하자 에서는 음식을 얻는 대가로 장자의 명분을 주겠다는 맹세를 하고 한순간에 팔아버립니다.


    장자의 상속권을 얻어낸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이삭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겠노라 하였지만 리브가가 듣고 감쪽같이 남편을 속이는 것입니다. 영락없이 당한 에서는 고기를 잡아 돌아왔지만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지 않습니다.


    창세기 27장 33절 이하입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억울하게 두 번이나 속은 에서는 끝내 복수를 결심합니다. 창세기 27장 41절에,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에서가 야곱을 죽일 음모가 있음을 알고 이 사건의 실제 배후자 리브가는 야곱을 그의 외삼촌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보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외삼촌 집에서 신세 지게 된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열심히 양 떼를 쳤습니다. 품삯으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해 자진하여 칠 년을 섬기겠다고 했고 그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약속한 라헬을 준 것이 아니라 언니 레아를 준 것입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창 29:25)


    ‘술수부리는 자’ 야곱이 외삼촌의 술수에 발목이 잡힌 것입니다. 여하튼 세월이 지나고 야곱은 그 동안 신세졌던 외삼촌의 집을 떠납니다. 처음엔 빈 손으로 왔지만 20년이 지난 후의 야곱은 많은 식구와 가축을 거느린 거부가 되어 외삼촌을 떠납니다. 결국 야곱은 외삼촌마저 이긴 셈이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배경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라반의 집에서 재산과 두 아내와 자녀를 비롯하여 얻을 것을 다 얻은 야곱은 이제 성공한 사람으로 귀향길에 오릅니다. 그런데 야곱에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형의 얼굴 보기가 겁나는 것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났지만 야곱의 마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뇌 회전이 빠른 야곱은 선물 공세로 형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계획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먼저 부하들을 형 에서에게로 보냅니다. 32장 4절, 5절입니다.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그런데 야곱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창 32:6)


    야곱의 마음은 극도로 불안하고 두려워집니다. 형 에서와 화해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이 안섭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세 떼로 나누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떼에는 에서에게 줄 예물을 앞세웁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억 단위가 넘는 선물 공세입니다. 32장 14절을 보면,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가 열이라...”


    두 번째 떼에는 레아 가족, 다음으로 라헬 가족입니다. 만약 형이 예물도 안받고, 레아 가족을 공격한다면 라헬 가족 데리고 도망친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 날은 밤에 식구들을 다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한 후 자신 혼자 남아있는 것입니다.


    야곱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복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도 속이고 그것은 결국 자기도 속이는 인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 이름 자체가 ‘술수부리는 자, 재주부리는 자’로 야곱은 그동안 기회주의와 거짓 인성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기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씨름 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씨름을 거신 것입니다. ‘술수부리는 자’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이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씨름 거셨다는 것은 바로 야곱의 그런 거짓 인성, 기만의 죄성을 무너뜨리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술수, 기만의 인생관을 바꾸시려고 오셨는데 야곱이 고집부리며 안바꾸겠다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는 것이 야곱이 진짜 하나님을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이 자기의 고집 안바꾸겠다고 끈질기게 버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죄성 안버리겠다는 사람 강제로 버리게는 안하십니다. 하나님과 한 밤 중에 먼지 나도록 씨름하면서도 고집을 꺽지 않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결국 허벅지뼈를 치십니다. 그제서야 야곱이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술수 인생을 뉘우칩니다.


    오늘날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께 맞은 다음이라도 돌아오면 그것은 복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환도뼈를 치실 만큼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을 치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 때의 바로처럼 치면 칠수록 더 강퍅해 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27절에서 이제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는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처럼 하나님이 모르셔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아 지금까지의 네 인생이 무엇이었냐?”는 의미입니다. “너 지금까지 술수부리는 자로 살아왔지 않았냐? 지금이라도 그거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이제 너는 더 이상 야곱, ‘술수부리는 자’로 살지 말고 이스라엘로 살아라.”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싸워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항복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함을 보고 진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의 결과 400명의 장정을 이끌고 야곱을 치러 왔던 에서가 하루 밤 사이에 마음이 녹아 기쁨으로 해후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선물로 형의 마음을 녹이려했으나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하나님이 화해를 이루게 하신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내 머리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몸부림치며 먼저만 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삶은 먼지 나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야곱의 씨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걸어오시는 씨름은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고자 하는 은혜의 싸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버려야 할 고집, 교만, 죄성, 그리고 포기하지 못하는 내 자아, 내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준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준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그동안 자신의 이름처럼 살아왔던 경쟁심, 기만, 술수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에게 신실한 사람으로서 새로 태어난 아침을 맞이합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 인류 구속사의 계보에 오르는 큰 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면 나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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