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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복이 되고, 복의 통로가 되려면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3. 30. 00:51

    사순절 셋째 주일[20110327]


    내가 복이 되고, 복의 통로가 되려면
    (창 12:1-3)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안전한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보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그곳이 죄악의 자리라면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편안해도 그곳에 생명이 자랄 수 없다면 벗어나야 합니다. 안셀름 그륀도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나친 안전은 생명을 질식시킨다. ....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해 있으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듯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폭을 알아야 하고, 모험을 감행하기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숨이 막히게 된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아브람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편안한 세상에서 문명의 이기와 부를 누리다가 끝날 인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모르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 동안 하나님을 떠나 저주 아래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브람을 복된 자리로 불러내시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온 인류의 구속사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원형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원역사의 결말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은 새 창조 역사의 시작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고, 복의 약속을 믿었으며, 미지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의 시작, 그 출발이 아브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신앙의 땅, 죄악의 자리에서 불러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시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믿음의 원형이 된 아브라함이 갔던 길을 성경은 이제 우리가 따라가야 할 신앙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을 잊고 사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혜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명령은 현재 너의 삶의 자리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라고 하면 무조건 주어지는 혜택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 얻는 것도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10장 10절을 오해하며 외우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입으로 시인한다, 고백한다는 뜻은 구원 얻는 내 믿음을 삶으로 간증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시어 죄악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가야할 이정표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좁고 험한 길이지만 그 길이 생명 길”(마 7:13-14)이라고 하나님이 지시해 주시는 순간입니다. 죽음과 생명의 갈림 길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고통일지라도 실상 그것이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한 “너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어디입니까? 여호수아가 세겜에 모임 백성들에게 설교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 24:2)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달 신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떠나라고 하는 곳은 조상들이 믿던 우상 숭배의 자리입니다. 떠나라는 것이 단순히 고향 땅 떠나고, 익숙한 환경 바꾸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시편 1편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악 된 자리에 머물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무리 편해도 우상 숭배하는 자리는 죽음의 장소이기 때문에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우상 숭배의 자리를 떠나라고 명하시면서 이어서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네게 복을 주겠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입니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복 그 자체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인데, 다른 말로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고, 우리말로 복덩이가 되게 하겠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너는 복이 되게 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서의 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에는 84회나 복이라는 단어가 언급됩니다. 본문에서도 5번이나 복이 강조됩니다. 복의 특성은 창세기 1장 12절에서처럼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 입니다. 한 마디로 ‘확장’ 또는 ‘풍성한 열매’의 의미입니다. 반대로 저주의 특징은 ‘확장의 중단’입니다.


    오늘 본문 전의 창세기 11장을 보면 아브람의 조상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바벨 문화권의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며, 실제로 데라의 족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수명이 단축되고, 일찍 죽고, 자녀가 생기지 않는 저주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주란 허물과 죄로 죽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 상태인 아브람을 부르셔서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수명이 단축되고, 일찍 죽고, 자녀가 생기지 않는 저주의 상태를 바꾸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2절에서처럼 큰 민족을 이루고,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것을 구원의 계보가 이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고, 어려움이 없고, 고난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덩이 된 우리 사이를 그 문제가 괴롭히지 못하고, 어려움이 가로막지 못하고, 고난이 방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고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구원의 계보가 복덩이 이삭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이삭에게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삭도 살면서 흉년을 경험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니까 복을 받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배를 얻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백배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물질적 복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는 배신을 겪고,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으로 바뀌는 인간적 비애를 겪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환란 가운데 생을 포기했다면 구원의 계보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복이 이어진다는 것은 죽을 고비를 경험해도 하나님이 살리시고 더 큰 복을 예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 20절에 가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 한 마디 안에 창세기 12장 1절, 2절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덩이가 되게 하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새 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어 2절에서 복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3절에서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단순히 나 한 사람 구원 받으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을 뿐만 아니라 나를 통해 내 가정이, 내가 속한 직장이, 내가 속한 민족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오늘 내가 하는 생각,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구원의 역사가 달려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않되겠습니다. 내가 건넨 말 한 마디가 낙심한 자 살릴 수도 있고, 내가 보여준 행동 하나에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된 존재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셨고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에겐 복덩이 신분을 누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상 숭배의 자리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죄악의 자리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입니까? 내가 거하는 곳은 어둠입니까? 빛 가운데입니까?


    복된 존재가 되기 전 청산해야 될 것은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였습니다. 말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믿는 것입니다. 복의 통로를 가로막는 썩어져 갈 구습을 끊어야 합니다(엡 4:22). 몸에 밴 죄성, 악한 생각의 습관을 제거해야 합니다. 유혹의 자리, 죄 짓는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받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날마다 죄악의 쇠사슬을 끊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은혜의 자리로 순종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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