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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 있음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9. 9. 11:40

    성령강림 후 제14주[20090906]

     

    생명이 있습니까? (눅 5:1-11)

     

    요즘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가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영성이란 말은 영적인 것이란 의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것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이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영적인 존재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기독교 영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성을 회복한다는 말은 존재론적 의미로 영성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 영성이란 말을 하고, 마치 영성을 얻는 것이 목표인양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듯이 우리의 영성은 좋은 나무가 되어야하고, 그러면 우리의 열매는 빛과 사랑의 삶으로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영성과 삶의 관계를 말씀드리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 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때 이러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성을 외친다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래서 영성을 쉬운 말로 생명 있음 또는 생명(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라 바꾸어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생명 있음의 증거가 보인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힘차게 우는 것은 여기 한 생명이 있다고 외치는 세상에 대한 신고식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눈물은 생명을 순산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생명이 있는 소나무는 푸른색과 솔내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자신의 생명 있음을 각각 창조주가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증명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인 생명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도 살아있는 사람을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영혼이 생명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인간 구원에 있습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어부들은 밤새 그물질을 하였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호숫가에서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베드로의 배에 올라 무리를 가르치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하며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다시 한 번 던집니다. 그렇게 하자 고기를 잡은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예수는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그물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의 고기를 못 잡은 빈 그물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고기를 건져 올린 찬 그물입니다.

     

    베드로의 빈 그물은 하나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빈 그물은 도구는 있지만 결과가 없는 헛수고 인생을 상징합니다. 지식과 기술, 능력은 있지만 생명 있음에 아무 소용이 없는 실패입니다. 그 그물은 아무런 생명도 건져 올리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린 그물은 확실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풍부한 수확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건져 올린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말씀에서 두 개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내가 이후로는 너를 사람을 사로잡는 사람이 되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1. 예수님이 말씀하신 깊은 데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인생들은 각각 저마다의 호수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리고 많은 고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이는 돈이라는 호수에 그물을 던집니다. 어떤 이는 명예라는 호수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고백은 밤새도록 헛수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모두 밤을 맞게 됩니다. 인생의 밤에서 빈 그물만 남게 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고기가 가득 찬 그물질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물이 나쁘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그물대신 다른 그물을 쓰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은 우리가 그물질을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깊은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는 깊은 호수는 바로 인간의 영혼입니다.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인간의 영혼에 너의 그물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건져 올린 베드로의 고기들은 바로 베드로 자신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밤새 자신의 수고가 헛됨을 알고 예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내 구주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고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사로잡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 생각, 인간적 방법과 수단으로 세상을 살아보지만 세상에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물을 던져야 하는 깊은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그 곳은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곳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곳에 인간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영혼에 그물을 던지는 삶을 살 때, 우리 영혼이 구원을 얻고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구원되고 변화되는 결단의 카이로스가 없으면 삶이 성결해질 수 없고,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며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방법만이 영혼 구원의 방법이요. 가정 구원, 사회 구원, 세상 구원의 방법이 됩니다. 나의 그물은 예수님의 말씀의 그물입니까? 이제 우리는 그 말씀의 그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그물로 빛을 잃은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출발은 내 영혼에 생명 있음으로 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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