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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는 평화의 길을 만드는 순례자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4. 13. 22:00

    종려주일(2014년 4월 13일)

    누가복음 19장 41-44절

     

    성도는 평화의 길을 만드는 순례자입니다.

     

     

    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애통하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

     

    오늘은 예수님이 수난의 한 주간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성에 다다르시자 성을 보고 우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소리 내어 우신 이유는 도성의 겉모습이 아닌 그 이면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시작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 하셨습니다. 이제 사역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이독경처럼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함과 예루살렘 성의 앞날이 교차하며 말로 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회개를 호소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렘9:1).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정, 사람이 주인이 된 교회,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세대를 보며 애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모르면 장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2절).

     

    본문에서 ‘너’는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너희들이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이라도’라는 표현에서 일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감으로써 이루어지는 총체적 모습을 말합니다. 곧 이 평화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갈 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평화에 이르는 길이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지만 이스라엘은 눈이 어두워 평화를 만들어내는 조건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근본적인 평화를 이루는 일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옛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평화가 재현되기를 바랬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는 항쟁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반란으로 독립을 꿈꿨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함락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따를 때에 참된 평화가 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43-44절).

     

    본문에서 ‘날이 이를지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은 40년이 지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후 66년 1차 유대반란으로 시작된 전쟁은 5년 만에 예루살렘의 초토화로 끝이 났습니다. 말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해도 사람들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며 찬양하고 평화를 기대했습니다(38절). 그러나 그들은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평화의 길이 있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마5:9).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해 이루는 평화를 외쳤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기초한 평화의 조건은 비폭력, 살인금지, 원수용서의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평화로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를 돌보셨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곧 평화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이러한 평화의 길을 적극적으로 가야하겠습니다.

     

    라. 성도는 평화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44절).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살핌’은 하나님의 권고와 방문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시기 전에도 천사를 보내어 강권하셨습니다(창19:15). 바벨론 심판을 앞두고도 예레미야를 보내어 경고하셨습니다(렘4:19). 이렇게 하나님은 심판을 앞두고 방문하시어 돌이키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마지막 평화의 도구로 살다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순례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간디가 영국이 만든 소금법에 맞서 바다를 향해 행진했던 것처럼, 마틴 루터 킹이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워싱턴 평화의 행진을 벌였던 것처럼, 우리도 평화의 복음을 들고 새 예루살렘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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