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2. 16. 22:07

    주현절 후 여섯째 주일(2014년 2월 16일)

    시편 1편 1-3절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합니다.

     

     

    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1절).

    “복 있는 사람은...”(1절).

     

    시편 1편의 시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의 실존을 선포하였습니다.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이기도 한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어처럼 쓰였지만 여기서 ‘복 있는’이라는 말은 ‘에세르’로 탄성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도다!’라는 하나님의 인간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하였습니다(창12:2). 많은 인생들이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자기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살았지만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음 모든 인생은 그 자체로 복입니다. 하나님은 복된 인생과 저주 받을 인생을 처음부터 따로 구분해서 이 땅에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요셉은 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라다가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창39:2). 요셉은 노예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그 자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복된 존재임을 잊은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복은 환경과 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생 자체가 복입니다.

     

    나. 자칫 한 눈 팔면 허탄한 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됨을 잃어버리는 순간 세상의 기준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본문 1절에서 그런 모습을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된 인생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의 주인을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라는 사실과 신 의식을 잃어버리는 순간 세상의 허탄한 일에 한 눈 팔게 됩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는 순간 죄와 사망의 법이 지배하는 세상 풍조를 동경하게 됩니다. 세상이 들려주는 가짜 천사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고후11:14).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허탄한 일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정말 택해야 할 좋은 편을 택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눅10:42). 이 말씀은 영적 분별력의 지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한 눈 팔면 쉽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됩니다(요일2:16).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이미 원수 된 상태입니다(약4:4).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마귀의 미끼에 넘어가지 않도록 눈과 귀를 조심해야 합니다(마13:16).

     

    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합니다(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 한 눈 팔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복 있는 사람은 토라를 즐거워하고, 토라를 주야로 묵상한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토라는 율법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이었고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토라를 배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길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토라를 즐거워하고 날마다 소리 내어 읊조리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합니다.

     

    법에는 근본적으로 구속(拘束)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지킨다는 것은 울타리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아담과 하와 이야기가 처음부터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박을 거부한 아담과 하와는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창3:23).

     

    하나님의 토라를 즐거워하고 늘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우리를 위한 울타리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내 판단으로 준법 여부를 저울질 하는 인생은 하나님과 관계가 이미 벌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된 관계는 율법의 준행 여부를 고민하지 않고 말씀이 어떻게 내 마음 깊이 뿌리 내릴까를 고민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시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간절함이 삶에 묻어나야 합니다(시84:10).

     

    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은 참된 열매로 보상받습니다(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3절).

     

    인생은 짧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언제 시집가고 장가가냐 생각되지만 그러다 보면 벌써 황혼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허송세월 보낼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소리에 관심 갖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바울의 고백처럼 맡겨진 사명을 위해 전심전력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행20:24).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날마다 묵상합니다. 인생을 살며 한 눈 팔지 않고, 베드로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로 살아갑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

     

    마찬가지로 같은 표현이 본문 3절에서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말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시들지 않습니다. 생명의 젖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가에서 자라는 나무의 비유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푸르른 빛깔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받는 보상이 됩니다.

     

    이삭은 살던 땅에 흉년이 들어 그랄 땅에 가서 거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해 농사하여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창26:12). 여기서 백배는 단순한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얻게 된 복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런 인생의 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는 인생, 하나님과 늘 함께 있기를 즐거워하는 인생 그 자체가 복이라고 우리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