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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리교인의 정체성
    성경적 구원의 길 2008. 11. 29. 12:02

    John Wesley, Preaching to the newly converted



     


     

    감리교인의 정체성

     

    이관수


    들어가며
    2009년 초 미국에서는 영화 “Wesley”가 나올 예정이다. 이 영화의 감독 John Jackman은 인간 웨슬리의 영적 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umc.org의 기사 “Independent feature movie tells story of John Wesley” 참조) 이 기사를 보며 필자는 한국교회는 아니 한국 감리교회는 웨슬리를 얼마나 알며, 어느 정도나 관심갖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18세기의 웨슬리와 웨슬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진 교리, 정신, 훈련으로 비롯된 감리교인(the People called Methodists)의 정체성을 정리해 본다. 



    1. 웨슬리 사후의 분열

    웨슬리 사후 영국은 메소디스트 신도회(Methodist Societies)를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와 분리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갈등이 일어난다. 결국 1795년 메소디스트 신도회는 총회의 결의를 통해 국교회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고, 국교회 안에서의 신앙 갱신 운동의 성격에서 새로운 종파의 형태로 탄생하게 된다. 이후 영국 메소디스트 교회에서도 분리와 분파의 과정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미국의 경우도 처음엔 상황이 비슷하였다. 웨슬리의 추종자로서 1760년대 미국으로 간 메소디스트 평신도 설교가들은 메소디즘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하고 메소디스트 신도회를 구성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독립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이 변수를 가져왔다. 웨슬리는 영국 국회의 결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독립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애즈베리(Francis Asbury)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독립전쟁이 끝나고, 1783년 미국이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84년 볼티모어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미국의 메소디스트 신도회는 교회 형태의 치리 행정을 결의하기에 이른다.

     

    비록 미국 감리교회가 웨슬리의 지도력 아래에서 시작하지만 실질적인 미국 감리교회의 지도자는 애즈베리였다고 볼 수 있다. 1813년까지 미국 인구 여덟 사람 중 한 명이 해마다의 메소디스트 캠프 미팅에 참여했고, 1860년 무렵에 이르기까지 메소디즘은 “미국에서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형태”라고 강조하는 놀(Mark Noll)의 말을 인용하며, 이러한 변화의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애즈베리였다고 솔터(Darius Salter)는 주장한다. 미국의 독립을 지지하며, 미국에 남아있던 애즈베리는 미국의 감리교회 지도자로 부상하고, 감리교회는 크게 성장하지만 애즈베리 사후(1816년)에 미국 감리교회도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1844년 뉴욕 총회에서는 당시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를 계기로 노예제도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무리가 새로운 교단의 이름으로 분리했으며(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 이 기회에 감독제도까지도 거부하며 순수한 웨슬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무리까지 분리해서 나오게 되었다(Wesleyan Methodist Church).

     

    2. 위기와 기회

    웨슬리와 애즈베리 사후 영국과 미국에서의 감리교회는 각각 많은 분파들로 분열의 역사를 거듭하게 된다. 한때 미국은 감리교회의 감독이 링컨의 장례식을 집례함으로 비공식적 국가 교회로서의 명예도 얻었으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양국 모두 교인수의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생스터(William Sangster)는 1932년 영국 감리교회가 재통합하기 전까지 30,000명 이상의 교인을 잃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교인은 줄어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윌크(Richard Wilke) 감독도 1964년 11,054,634명의 교인을 자랑하던 미국 감리교회(Methodist Church)가 1968년 EUB(Evangelical United Brethren Church)와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는 UMC 교인수의 현실을 소개하고 있다. 윌크 감독이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이러한 현실에도 “이제 바닥까지 내려갔으니 앞으로는 성장하겠지”라든지 “우리는 정체되어 있지만 세계적으로 다른 감리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다”는 등의 안일한 생각과 안일한 대처이다.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현실도 영국과 미국의 선례와 다를 바 없다. 감리교회의 교세가 정체되고, 감리교회가 이 사회에서 가야 할 길을 잃고, 무질서 속에 목회적 혼란까지 겪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필자는 그것을 “감리교인의 정체성”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시대와 상황이 하나님이 주시는 채찍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아서야 한다.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방법이다. 이제 웨슬리와 초기 메소디스트들이 가진 신앙으로 잠시 돌아가보고자 한다.

     

    3. 웨슬리는 누구인가?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기에 앞서, 우리는 웨슬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웨슬리를 이해하려면, 웨슬리에 대한 선입관부터 버려야 한다. 웨슬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그의 생애를 읽으면 그를 오해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다던가, 체험을 강조했다던가 하는 편견이다.

     

    웨슬리의 생을 되돌아볼 때 그가 외쳤던 이야기의 주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하나님 이야기와 신자의 삶”이다. 웨슬리는 글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남기길 원했다. 웨슬리는 노년에 메소디즘의 시작과 발전을 회상하면서, 그 시작은 자연스럽게 일어났으며, 발전해 나가는 방향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웨슬리는 메소디스트를 일으키신 목적을 설명하면서도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전파한 것도 자신의 계획된 의도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결국 웨슬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운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점이다. 웨슬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앞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심이며, 인간의 체험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또 하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도식이 신앙생활의 한 구석에 일찍부터 자리 잡힌 사람은 웨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웨슬리를 이해하려면 이런 도식부터 버려야 한다. 물론 웨슬리의 메시지도 단순하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이 다르다. 그는 성경 상의 “가난”을 “겸손”, “낮아짐”, “헌신”, “자기 부정”이라는 단어로 해석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이 “겸손”을 “믿음”, “소망”, “사랑” 보다 앞서는 신자의 삶으로 보았다.

     

    우리는 그동안 웨슬리의 출판된 설교 원고 몇 편을 가지고 웨슬리가 말한 성화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지, 아니면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져왔다. 웨슬리는 “자신이 설명하는 내용 전부를 알려면 자신의 저널을 다 읽어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웨슬리의 설교 한 편으로 그의 신학을 다 담아내려는 우를 경계해야 한다. 웨슬리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 이야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신자의 삶”인 것이다. 웨슬리는 신자의 삶, 곧 성화를 한평생 설교했고, 그렇게 살았다.

     

    웨슬리 시대에도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은 사회 문제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예제도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제도가 옳은지 그른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성경과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악은 악이라고 잘라 말했다. 웨슬리는 누구인가?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았던 사람이다. “복음주의는 반드시 보여질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분출시켜야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복음주의의 열매는 곧 시들고 이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아우틀러(Albert C. Outler)의 말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웨슬리는 진정한 복음주의자였다. 기실 “사회적 성결없는 성결은 없는 것이다.”

     

    4. 감리교인의 정체성, 감리교의 본질

    17세기 후반, 왕정복고 후 영국 사회는 상류층의 방탕과 전체적인 도덕적 타락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위기의식이 소수의 신앙인들을 영적으로 자극했는데, 그 가시적인 결과가 경건과 거룩을 추구하는 소사이어티(Societies) 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운동은 회심 자체보다는 회심 후 양육에 더 관심을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켜 영국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소사이어티들이 공히 가지는 목표가 “마음과 생활의 성결 증진”으로 우리는 비단 웨슬리의 홀리 클럽(Holy Club)만이 가진 목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메소디즘의 본질을 밝히는 글을 연회록, 편지, 논문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과 생활의 성결”이다.

     

    웨슬리는 “메소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약사”(Short History of People Called Methodists, 1781)에서 1729년 이후 이러한 작은 모임의 정신이 메소디스트 소사이어티의 태동 원리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웨슬리가 언급한 메소디스트의 모체는 1729년의 옥스퍼드의 홀리 클럽, 두 번째로 조지아 사반나에서의 소그룹 모임, 마지막으로 1738년 런던에서 조직한 피터 뵐러와의 페터 레인 소사이어티이다.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찾는데 있어 우선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감리교의 태동은 이러한 경건 모임에서부터였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국교회의 공중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중요시했고, 이와 더불어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소그룹으로 된 제자훈련 모임(Accountable Discipleship)이 함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메소디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웨슬리의 소그룹은 특별히 모라비안의 밴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 홀리 클럽 때는 그렇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반나에서의 모임 이후로는 모라비안의 영향이 있었다.

     

    세 단계로 시작된 메소디스트 태동 원리를 정리해 보면, 메소디즘의 본질은 소그룹을 통한 공동체의 영적 성장에 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 하나는 성경 연구이다. 그리고 성경 연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서로가 가르치고, 권면하고, 신앙을 지도 할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는 영적 교제이다. 마지막으로 선행의 실천이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고, 병자와 죄수를 방문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면, 감리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5. 회복의 길

    케이저(Charles W. Keysor)는 “초대 감리교 신앙은 당시의 일반적인 영국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매우 달랐기 때문에 초대 감리교인들은 자주 위험한 광신주의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고 핍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이 시대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초대 감리교 신앙은 세속주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시대의 조류에 맞서 하나님의 뜻을 지켜내었다. 18세기 영국이라는 지역과 그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갔던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필자는 메소디즘의 본질을 영적 소그룹을 통한 성결의 추구에서 찾아보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공중예배 없는 소그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재차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이 중요하듯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의 모델을 갖추는 것이 메소디즘의 본질이 될 수 없음 또한 자명하다.

     

    “메소디즘의 잃어버린 보물이 된 것, 그것은 마음과 생활의 성결이다.” 웨슬리는 성결을 추구하는 그들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밖으로 내보내셨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거룩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거룩함의 추구, 경건한 삶에 대한 열망, 성결의 능력이 바로 하나님이 초기 메소디스트를 일으켜 사용하신 원동력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그룹을 통한 성결의 능력은 세 가지의 특징적인 요소로 나타났다. 이것이 감리교 신앙의 핵심이다. 첫 번째는 성경 연구를 통한 경건의 능력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규율과 훈련을 중요시 했고,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영적인 권면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런 모습이 남아있는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는가? 타락해가는 신자를 보고 기도하고 권면하는가? 죄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고백할 때 그 세력을 잃게 된다. 오늘날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없다면 감리교의 본질은 사라져 버린 셈이다.

     

    두 번째, 성결의 능력은 거룩한 사랑의 모습으로 타나났다. 사랑이 원동력이 되어 복음을 증거하였다. 미국에서는 말을 타고 순회하는 감리교인들이 방대한 미 개척지를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이주민들이 도착하면 감리교 설교자가 도착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교회를 지어놓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초대 감리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채 못넘겼다. 진정한 감리교 신앙은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안가는 곳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남아있는가?

     

    세 번째로, 성결의 능력은 완전한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완전한 사랑이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성결의 능력에서 선행이 나오고, 사회 구조 악을 이길 수 있는 힘, 곧 사회적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감리교회의 리즈(Leeds) 교구 의장까지 지낸 헬리어(Benjamin Helli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완전 성화는 모든 일에서의 성화를 뜻한다. 예를 들어, 매일 일에서의 성화는 주님께 하듯 일하는 것이며, 농부는 성실하게 경작하는 것이며, 벽돌공은 최선을 다해 벽돌을 쌓는 것이며, 의사는 돈벌이 그 이상으로 신경써서 치료하는 것이다... 완전 성화란 우리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완전 성화란 간단하다. 우리의 모든 시간을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경대로 산 사람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산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이것이 메소디스트의 정체성이다.

     

    적어도 이러한 세 가지의 특징들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메소디스트들의 독특성이다. 웨슬리와 초기 메소디스트들이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추구한 성결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참고도서>

    박창훈, 존 웨슬리, 역사비평으로 읽기 (대한기독교서회, 2007)

    Eric Baker, The Faith of a Methodist (Wyvern Books, 1962)

    Rupert E. Davies, ed. The Works of John Wesley, Volume 9 (Abingdon Press, 1989)

    Richard P. Heitzenrater, Wesley and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Abingdon Press, 1995)

    Charles W. Keysor, 감리교의 유래, 조재국 옮김, (생명의말씀사, 1984)

    Frederick A. Norwood, The Story of American Methodism (Abingdon Press, 1974)

    Albert C. Outler, 웨슬리 영성 안의 복음주의와 신학, 전병희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08)

    William E. Sangster, Methodism can be born again (Hodder & Stoughton, 1938)

    Stephen A. Seamands, Holiness of Heart and Life (Abingdon Press, 1990)

    Richard B. Wilke, And are we yet alive? (Abingdon Pres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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