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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은 곳에서 부르짖으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6. 29. 04:49

    성령강림 후 제4주[20090628]

     

    깊은 곳에서 부르짖으라.(시 130:1-8)

     

    6·25 전쟁 때 중공군에 포위당해 죽게 된 한 군인이 “하나님, 여기서 저를 살려 주시면, 앞으로 하나님께 저를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습니다. 그리고서 중공군이 쫙 깔린 25 리를 정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신학교를 나와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의사의 죽음 선포에 기가 죽고 의지가 꺾여 절망감과 우울증으로 지레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8개월 후에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겁을 먹고 아예 3개월도 못살고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앞두고 한 사람은 살 수 이었고, 한 사람은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이러한 위기 상황에 언제든지 직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땐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생과 사의 결투인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과 훈련을 통한 실력과 집중력의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다윗은 육체적인 능력만 가지고 보면 골리앗을 이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자연적인 힘에서는 골리앗을 당해낼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은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만 의존했지만, 다윗은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에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플러스시켰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 쓴 것입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출애굽 사건에서 보게 됩니다. 라암셋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이 육십만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앞에 두고 진퇴양난에 빠집니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압박해 옵니다. 이때 모세가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4장 21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머릿속에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 “아,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하는 상황을 성경에서는 “깊은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마치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도무지 내 힘으로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상황이 바로 깊음의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시편 130편 1절과 2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인은 깊음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깊음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좌절을 맛보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여러분의 앞길이 막막해 보입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깊음의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깊음 속에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마지막 희망의 노크입니다. 나 혼자 고민하다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깊음 속에서 좌절할 것이냐, 기도할 것이냐?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부르짖으라.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인은 깊음의 상황에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시인은 깊은 곳에서 주님을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의 부르짖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그런데... 불현 듯 머리에 스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모습입니다. 시편 130편 3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주께 부르짖었더니 오히려 나의 죄와 허물만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가 괴로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잊어버린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는 이런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악보다 더욱 크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편 130편의 시인은 깊은 절망 가운데 생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건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너를 살려주겠다는 확답도 아니요, 너에게 옛날의 지위를 복원시켜주겠다는 응답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의 죄만 보이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어 정죄하시려는 데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실 때가 은혜의 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자신의 죄악을 보게 만드셨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시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3절에서, “주님께서 죄악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신다면 어느 누가 주님 앞에서 의롭다고 서겠습니까? 주님께서 죄악의 많고 적음으로 심판하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렇게 마지막 절규를 보내는 순간, 하나님은 시인에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죄 용서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4절,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죄 사함의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이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인자를 외치며, 하나님의 풍성한 구속하심을 외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우리는 영혼의 깊음 속에 있을지라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기도해야 합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 앞에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사람들은 풀뿌리라도 잡아볼 심정으로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 더 큰 화를 당하는 경우를 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편 121편 1, 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46편을 기억하십시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둘째, 우리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정욕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반드시 오는 법입니다.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이 땅에서 하늘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때 우리에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를 별로 승화하는 창조의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은혜받은 사람을 그냥 놔두는 법이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나 혼자의 구원받음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선한 청지기”의 사명으로 공동체를 섬기게 하십니다.(벧전 4:10)

     

    하나님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요나를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깊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회개하는 요나에게 니느웨에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주십니다.

     

    *윌리엄 폴 영 예화

     

    왜 나에게 이런 깊음을 경험하게 하시나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보니 깊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주시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깊음 속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깊음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상처를 별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간증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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