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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할까?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4. 6. 12:33

    종려주일[20090405]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할까?(요 12:12-19)

     

    1. 예루살렘 입성 전주곡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두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전 11장과 12장에는 중요한 사건이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각종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는데, 이것은 불완전한 자가 완전케 되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것도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가 부패하고 냄새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상태에 있는 나사로 고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이가 바로 자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부활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 상태라고 특별히 요한복음은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또 하나의 사건이 12장 초반부에 나오는데, 유월절 엿새 전, 그러니까 일요일 저녁 무렵 예수님을 위한 잔치 자리에서 마리아가 귀하고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은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사건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는 사라지고 온 집안에 향기가 가득 찼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 자신의 사랑을 한없이 표현하였습니다.

     

    이 두 사건은 마치 예루살렘 입성 전에 울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전주곡처럼 들립니다.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묵으신 예수님은 이제 담담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 정치인들은 이런 민심의 동요가 로마 정부의 폭정으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 합니다. 당시 유대인 중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나사로도 다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퍼져 마침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하러 모입니다.

     

    3. 표적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표적 행하심을 듣고,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말씀으로 반응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반응하셨습니다. 그 행동은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이루시는 행동이셨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이유는 자신들을 로마의 속국에서 해방해줄 이스라엘의 정치적 왕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군중 심리를 이용해 분위기를 잡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들이 외친 “우리의 구원자요 메시야, 이스라엘의 왕”은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반응하지 않으시고 다만 나귀를 타시고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 겸손한 왕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대적자들

    또 한 무리는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어쨌든 예수를 죽일 방도만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환영하는 일이 “쓸 데 없다” 하였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삼중대적이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 나라 밖의 대적, 하나님 나라 안의 대적, 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대적이 있는 것입니다.

     

    5.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 모두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려면 그 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군중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시오, 주의 이름 이름으로 오신 메시야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큰 표적을 보여주고, 군중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 왕으로 등극하려는 예수님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의 심리를 이용하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겸손한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이것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러 십자가의 길로 향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5-6)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요한복음 10장 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압니다. 죽기까지 순종한 하나님의 길임을 압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에 응하는 것이 주님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은 화려한 외출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길은 그분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과 인내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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