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갑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0. 2. 27. 22:30

    사순절 제1주/졸업감사예배[20100221]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갑시다.(눅 19:11-27)

     

    오늘 졸업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어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년으로 진학하게 되는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오늘처럼 졸업식, 결혼식, 장례식 등을 경험합니다. 졸업식에 졸업생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결혼식에 결혼 당사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입니까? 모두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입니까?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가운데 미혼인 사람은 결혼식을 보며 인생에서 만남이란 무엇인가를,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장례식에 참석하면서도 그 시간 세상을 떠나간 사람도 애도하지만 나의 죽음에 대해 묵상해 보는 자리여야 할 것입니다. 장례식은 우리 인생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지를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됩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시간 인생에서 과거의 삶을 반성해 보고, 새롭게 주어지는 인생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면 의미 있을 줄 믿습니다.

     

    저는 오늘 졸업하는 사람들과 졸업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낳아주셨으니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태어난 것입니까? 우리가 최소한 신앙인이라면 내가 왜 이 땅에 태어 낳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11절을 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이 비유는 삭개오 이야기와 연관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인즉 어떤 나라에 왕위를 계승하기로 되어있는 귀인이 있었습니다. 귀인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큰 나라로 다녀와야 하는데, 가기 전에 그 종 열 사람을 불러 한 므나 씩을 나누어주며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한 사람은 한 므나로 열 므나의 소득을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의 소득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에게 동일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칭찬을 들었는지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17절,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문제는 소득이 없는 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귀인에게 어떤 야단을 들었는지 이것도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22-23절,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한 므나를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 므나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그 한 므나를 받은 것으로 어떻게 하여 소득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당시 은화 한 므나를 오늘의 돈의 가치로 환산해 보면 어른이 받는 하루 품삯의 100일치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므나가 얼마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므나씩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들을 맡겼다는 것과 어떻게 그것으로 장사를 잘 할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차별 없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태어날 때, 손에 돈뭉치 쥐고 태어난 것 아닙니다. 태어날 때 화려한 옷 입고 태어난 사람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므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조건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부모 잘 만나서 잘되고, 부모 못 만나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승부는 물질적으로 소유한 것 가지고 결정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작부터 불공평하신 하나님이신데, 성경은 분명히 동일한 은화를 나누어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생의 승패가 결정난다는 것입니까? 바로 동일하게 주어진 바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장사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공기인가요? 그것도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공기 마시면 오래삽니다. 시간인가요? 그것도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성과가 있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부모님 만나면 신앙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물질의 공급을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복을 물려주는 부모입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처음에는 동일한 조건으로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본문이 말하는 한 므나의 의미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을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겉모습이 다릅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똑같이 주어진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세 살이 지나면서부터 하나님의 형상 안에 담겨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밑천인 보물들을 하나둘씩 잃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고난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인데, 마치 이 세상에 자신만 이런 고통당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버리고 절망으로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입고,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말에 매여 주눅 들고, 자존감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원래 주신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을 잘못 만나 예수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고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라는 보물을 주셨는데, 이 믿음을 발견하고 깨닫기도 전에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믿음 대신 부모의 생각과 이성과 불신으로 믿음을 잃어버린 체 살아갑니다.

     

    한 므나를 수건에 감싸 지하창고에 보관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삶을 포기해 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것이 적다는 열등감으로 살았습니다. 또 이 사람은 스스로 왜곡되어 각인된 하나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벌주고 심판하시는 분, 실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실수를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을 두려워해 용기 있게 일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귀인은 돌아와서 이 종에게 실적이 없는 그 자체를 야단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삶을 거부한 행위를 악하다고 나무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부 못한다고 야단치시지 않습니다. 공부를 포기하고 시도하지 않는 나약함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입고 쓰러졌다고 야단치지 않습니다. 상처 입었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겁쟁이로 살아가는 우유부단함을 지적하십니다.

     

    이 비유는 앞선 삭개오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삭개오는 살면서 동족들의 비난과 배척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잊은 체 성공주의 인생을 지향했습니다. 그러나 성공주의의 삶은 허무했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삭개오가 사는 여리고를 방문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일생일대의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만이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내 인생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세 번째 종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중반에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보다 못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잘 먹고 편하게 살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놀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러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 안에 담긴 밑천으로 수고하고 일하라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부 잘했다고 성공한 것 아닙니다. 공부 못했다고 실패한 것 아닙니다. 금메달 딴 것이 인생 성공 아닙니다. 4등해서 메달 놓친 것이 인생 실패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체 사는 것이 인생 실패요,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삶이 인생 성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형상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채, 왜곡시켜 버린 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장사 잘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