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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거룩한 삶인가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2. 23. 14:47


    주현절 후 제7주일[20110220]

     

    무엇이 거룩한 삶인가(레 19:1-4)

     

    데이빗 웰스(David Wells)의 「거룩하신 하나님」(God in the wasteland)이라는 책에 보면,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이유가 세 가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가 현대인들에게 가볍게 느껴지고 있고,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계시된 뜻이 일상생활의 내용과 거의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선뜻 계명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며, 그런 일을 하도록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냉담하다고 말합니다.


    셋째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선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 자체만으로 충분한 신학이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이야기는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룩하라’는 요구도 무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거룩의 요청을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도대체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 우리의 구원과 상관있는 것인가요?

     

    이러한 질문을 생각하며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왜 거룩하라고 하시는지’ ‘거룩의 영역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거룩해지는지’에 대한 성경의 말씀에 함께 귀를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왜 거룩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본문의 2절 말씀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하라”라는 ‘카도심’은 ‘구별, 분리’라는 일차적인 뜻이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출 19:5-6).

     

    출애굽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누구를 향하여 해방’이 더 중요한 점입니다. 즉 애굽에서의 해방보다 하나님을 향한 해방이라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을 언약이라는 최종 목적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언약의 유일한 대상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했고, 이스라엘을 ‘서굴라’ 즉 ‘보배로운 존재’라는 의미의 “내 소유”라고 부릅니다(출 19:5). ‘서굴라’를 보충해주는 말로 그 다음 절에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사장 나라’는 이스라엘이 고대 세계에서 왕의 지위를 차지했던 제사장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고, ‘거룩한 백성’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거룩’은 이스라엘이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왕의 지위를 얻은 구별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계명들을 지키면 하나님처럼 본성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으니 계명을 지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왜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는 분리를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과거의 구습을 버리고 가나안에 들어가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거룩의 영역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3, 4절에서는 부모 공경, 안식일 준수, 우상숭배 금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전체적으로 보면 거룩의 영역은 우리 삶의 전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는 16장 대속죄일을 중심으로 앞의 1-10장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과 11-15장의 물건, 육체와 관계된 거룩한 삶, 뒤의 17-22장은 하나님 앞의 성별된 삶으로의 사회적 거룩을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전체적으로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거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육체적인 면에서부터 가장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까지 하나님의 거룩과 청결을 체험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모든 일에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만 거룩한 날이 아니고 모든 날이 거룩한 말입니다. 이 시대 좋은 목회를 보이시고 은퇴하시는 큰나무교회 임종수 목사님의 목회 회고의 기사가 국민일보에 있어 옮겨봅니다. “신앙은 생활입니다. 주일예배는 서론에 불과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가 진짜 본론입니다. 신앙은 삶으로 생명과 평화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출애굽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비롯해 613가지의 구체적인 계명을 주십니다. 거룩이란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우리의 본성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게 구별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별된 백성’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났든 못났든 세상에서 눈에 띄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 이하를 보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포도나무는 보통 1미터 정도의 키고, 무화과나무는 3미터 이상으로 자라기 때문에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세상을 상징하고, 무화과나무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합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리 신분을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행실이 계명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신자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세속으로부터 철저한 분리를 요구합니다. 거룩은 세상과의 분리이지 하나님과의 분리가 아닙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이탈되면 그것은 고통이 됩니다.

     

    거룩의 반대 개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속이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거룩의 반대 개념은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 거룩해지지만, 계명을 떠나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고통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이어서 고통이 원인인 죄악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만 남은 것도 죄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19가지 죄의 목록들을 열거합니다.

     

    이는 죄의 대가는 고통이라는 것을 철저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서도 말씀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무익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지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시 119:47).

     

    성경은 거룩해야 주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며(히 12:14), 거룩해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말씀합니다(계 21:27). 하나님과 대면한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났듯이(출 34:29), 거룩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며(요일 1:3), 하나님의 계명을 즐겨 행하는(시 119:35), 구원의 삶이고, 그것은 산 위의 집처럼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마 5:14). 거룩이 곧 구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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