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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에 평화를 이루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9. 6. 30. 17:00

    성령강림절 후 3주(2019. 6. 30.)

    누가복음 19장 41~44절

    이 땅에 평화를 이루라.

     

    가.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셨는데 보시며 크게 우셨다}(41절)

     

    본문은 평화를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비통해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다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자 성을 보시고 크게 우셨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시122편). 이는 단순히 예루살렘에 전쟁이 그치게 해달라는 간구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라는 뜻입니다. 천국과 같이 그 땅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땅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이루는 길도 관심 없었습니다. 그저 메시아가 와서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그런 모습이 떠올라 애통해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화를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예루살렘아 네가 오늘이라도 평화를 위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나 지금까지도 네 눈이 가려져 있구나}(42절)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눈에 숨겨졌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지도 모르는 이스라엘의 우매함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셨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 보이는데 백성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의 기복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인들은 평강을 외쳤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렘14:13-14). 기복신앙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거짓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라.

    {예루살렘아 네가 오늘이라도 평화를 위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나...}(42절)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이라도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평화에 관한 일’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의의 신앙을 지키는 길을 말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세상이 다 불법을 행해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켰습니다. 그런 노아를 성경은 “의인이요 당대 완전한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창6:9). 하나님은 사람들의 불법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지만 노아 가족만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창7:10)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케세트)하셨지만 노아에게는 무지개(케세트)를 보여주셨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갑니다(마6:33). 예수님은 성전에만 들어가면 신앙의 의무를 다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이스라엘의 생각을 깨뜨리셨습니다(45절). 성전이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행할 때 하나님이 평화를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라. 하나님은 의의 백성을 구원하신다.

    {... 이는 하나님의 오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44절)

     

    이스라엘은 주님이 찾아오시는 때 곧 ‘여호와의 날’을 구원의 날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 하나님은 의의 백성은 구원하시지만 불의한 백성은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평화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 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의 제사를 기뻐하시지만 불의한 제사는 싫어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셨습니다(사1:13-15).

     

    하나님은 형식적인 신앙, 기복적인 신앙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 끝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약탈당하고 다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 날의 교훈을 깊이 생각할 때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곳에 평화는 깃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이루어가는 백성을 구원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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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번역

    41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셨는데 보시며 크게 우셨다.

    42절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아 네가 오늘이라도 평화를 위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나 지금까지도 네 눈이 가려져 있구나.”

    43절   “네게 그 날이 임할 것이니 원수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토성을 둘러쌓아 가둘 것이다.”

    44절   “또 원수들이 너와 네 자식들을 땅에 내던질 것이고, 예루살렘 성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오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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