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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과 새 언어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3. 2. 14:53


    사순절 제1주[20090301]

     

    침묵과 새 언어(마 12:31-37)

     

    지난 25일 성회수요일(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사순시기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을 생각하며, 침묵과 기도, 절제의 삶을 실천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악의와 위선을 질타하십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줍니다. 악의를 가진 바리새인들은 이를 보고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에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를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다고 비방하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가 메시야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라 말씀하시며, 입에서 나오는 그 말로 의롭다함도 받고, 정죄함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36절에 무익한 말이란 생각 없이 뱉은 말입니다. 이런 신중하지 못한 말, 함부로 던진 농담, 무심코 입 밖에 내뱉은 말도 심판을 면치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시기 우리의 목표인 침묵, 기도, 절제 모두 말과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제1주일을 맞아 말에 대해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보면, 주님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의 말은 사탄의 말이며, 정죄함을 면치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호통치시면서 그 근본의 악함을 꾸짖으십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선한 말을 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양서를 많이 읽는다거나 선한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부터 바꾸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예수님의 언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길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언어는 침묵

    우리가 예수님의 언어, 곧 생명을 살리는 말, 창조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침묵은 하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 지금도 우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십니다. 시편 19편 1절 이하를 보면,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빈첸시오 신부를 찾아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신부님, 남편과 더 이상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의 신경질이 지나쳐요.” ... 신부님은 “수도원 앞 뜰의 우물물을 조금 얻어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그 물을 얼른 입에 조금 머금으시오. 그리고 삼키지 마시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 며칠 후 부인은 신부님을 찾아와서 기적이라고 하며,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부인, 기적을 일으킨 것은 수도원 앞뜰의 우물물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의 침묵이지요.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고진하)

     

    사막교부 아가톤은 3년 동안 입에 돌을 물고 살면서, 마침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침묵이 중요한 것은 침묵 자체에 의미를 둘려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생명의 언어를 잉태시키기 위함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온 우주엔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인간은 알 수 없지만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우리가 근본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진대,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생명을 잉태하는 언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침묵 가운데 내 생각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가운데, 시편 19:14의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기도는 아침 이슬을 맺게 하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달리다굼” 사람을 살리는 말, 기적을 만드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새 언어는 감사의 말

    빌립보서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근심, 걱정하고, 불평, 불만 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기도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15:18절 이하를 보시면,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말은 곧 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말이 곧 그 사람의 영성의 수준을 드러나는 기준이 됩니다. 예수 믿고 변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감사의 말, 믿음의 말, 진리의 말, 복음을 증거하는 구원의 말을 하는 것이 신자의 언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그분을 믿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을 닮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주님의 언어를 닮아가길 원합니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시 141:3), “말의 실수가 없도록 혀를 길들여주소서”(약 3:3)라고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언어생활을 깊이 묵상하고, 닮아감으로써 우리의 말이 새벽이슬같이 정결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진리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요한 중에 말씀으로 세상을 우주의 화폭에 담아내셨습니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나온 말은 그토록 힘이 있습니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빚어진 말은 병든 자아와 상처난 관계와 뒤엉킨 삶의 혼돈에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갑니다.

     

    사순시기 침묵을 창조하고, 새 언어로 살아가시길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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