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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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새 사람의 표지입니다.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1. 20. 00:55
성령강림절 후 스물다섯째 주일·추수감사절[20121118] 감사는 새 사람의 표지입니다(골 3:15~17)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한 마디로 ‘새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골 3:10) 골로새서에서 말하는 ‘새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골 3:3) 땅에 속한 세속적인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새 사람입니다.(골 3:5) 그러면 실제 내가 ‘새 사람’이 되었는지 아직 안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은 친절하게도 골로새서에서 새 사람 됨의 표지가 있다고 증거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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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사람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0. 30. 22:26
성령강림절 후 스물넷째 주일[20081026] 자비로운 사람(마 5:7)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새번역에는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긍휼이라고 번역된 엘레오스는 “동정하다. 불쌍히 여기다. 인자하다. 사랑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자비에 해당하는 단어로 라카밈, 레헴이 쓰이는데, 이는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말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머니처럼 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비란 상처받은 아이를 어머니가 자신의 품 속으로 안아주며 달래주고 치유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자기 분깃을 챙겨 먼 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아들은 허랑방탕하여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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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드 멜로의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경건도서 서평 2008. 10. 24. 15:50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호수와 산, 전원과 강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지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누가 버스의 상석에 앉을 것인가, 누구에게 갈채를 보낼 것인가, 누구를 중요한 인물로 여길 것인가에 대해 말다툼하느라고 여행의 모든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럴 것입니다.” 앤소니 드멜로(Anthony de Mello) 신부님의 이 글을 읽는 순간 작금의 우리 교단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버스에 올라가서 자리에 앉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 자리에 한 사람씩 앉아야 가지요. 그런데 특정한 자리에 서로 앉겠다고 싸우면,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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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의 도리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6. 1. 21:08
성령강림절 후 셋째주일 부모와 자녀의 도리(출 20:12) 1. 약속 있는 계명 오늘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생각해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십계명 1계명에서 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명령이고, 5계명에서 10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그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에서는 이 계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십계명 5계명에 대한 바울의 해석인 것입니다. 어떤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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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님을 사랑하십시오.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3. 23. 08:39
부활절[20080323] 그냥 주님을 사랑하십시오.(요 20:1-18) 1. 사순절의 회고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지낸 40일간의 사순절이 지나고 드디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만일 사순절의 기간을 온전히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겐 부활절을 맞이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과연 오늘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그러한 자격이 되지 않음을 이번 사순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신 시간은 지난 고난주간의 금요일 정오에서 세시 사이입니다. 성경은 이때에 어둠이 계속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에,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인류의 역사상 가장 슬픈 카이로스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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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영성 읽기(6)마음과 생활의 성결 2008. 2. 19. 01:48
웨슬리 영성 읽기(6) [주제: 기독교] “그렇다면, 종교[기독교-역자주]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도움을 구해본다면, 여기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에 의하면 종교는 오직 하나의 관점 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고”(롬 13:10), “계명의 목적”(딤전 1:5)이 됩니다. 종교는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이웃이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모든 기질과 감정을 움직이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리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야 말로 “순결하고, 더러움 없는”(약 1:27)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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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영성 읽기(2)마음과 생활의 성결 2008. 2. 11. 12:53
웨슬리 영성 읽기(2) [주제: 사랑] 모든 것이 다 종교적 열심(신앙의 열심-역자주)이라 불려지기에 그 이름이 합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비(charity)와 결합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정확히 말해 종교적 열심(또는 기독교적 열심)이 아닙니다. 훌륭한 작가 한 사람이 그 문제를 심도있게 이야기 했습니다. “자비 없는 열심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는 만족한 표현이 못됩니다. 진정한 열심은 자비와 결합될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이 자비라고 확신합니다. 자비 또는 사랑은 하나의 구성 성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된 요소입니다.” 여기서 더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열심은 대부분 자비로 채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자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바울의 표현을 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