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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 학교의 의미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9. 2. 22:55

    성령강림 후 제13주[20090830]

     

    광야 학교의 의미(눅 4:1-13)

     

    잠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자는 척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깨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주변 환경과 사람을 통해, 때론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아직도 우리에게 인생의 시련이 오고, 고난이 오고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잘못된 길을 가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영적 무지와 무감각, 사랑의 메마름에서 우리가 깨어나길 원하십니다.

     

    비가 오고, 폭풍이 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비 온 뒤 하늘이 얼마나 맑습니까? 비가 대기 중의 오염된 공기와 먼지를 쓸어내리기 때문입니다. 비와 폭풍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의 찌꺼기를 정화함으로 우리는 상쾌한 공기를 맛보며,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오시어 사탄의 유혹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이끈 주체가 누구입니까?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40일을 광야의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광야는 고독과 시련과 유혹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1. 광야의 고독을 통과하라.

    예수님은 고독과 극한 상황 속에서 마귀의 유혹에 직면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사탄은 극한 상황 속에서 육적 욕망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는 능력을 얻고자 광야에서 금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 인생에도 영적 단계의 처음으로 직면하는 시험이 있다면 그것은 먹고사는 일에 대한 시험입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막상 배고프면 하나님이 안보이고, 말씀을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주일이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첫 번째 사탄의 유혹입니다. 광야는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독을 거부하고, 사람들에게 만나 도움을 구함으로 또는 놀이에 몰두해 고독을 잊어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육신의 배를 채운다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모든 인간의 진정한 배고픔은 정신적인 배고픔, 영혼의 빈곤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못하면, 먹는 것으로, 입는 것으로, 무익한 욕심으로 채우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는 육신 욕심대로 사는지를 시험하는 장소이고, 누구나 통과해야 할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광야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조차 이것을 거부하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보호 집단, 이익 집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야 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광야의 고독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삼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의 진정한 어울림도 광야의 고독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2. 섬김의 훈련을 하라.

    두 번째 유혹은 권력욕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고 유혹합니다. 이제는 마귀 자신이 하나님인양 행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천하를 만들고 다스린 주인인양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늘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 인간은 자신을 사탄에게 내맡김으로써 권력을 쟁취하려 합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대가로 자신이 사탄의 수하에서 사탄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결국 진정한 자유를 잃고, 진정한 사랑도 잃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지고, 그의 영혼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권력욕의 유혹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악마에게 대답한 성경 말씀 모두 신명기의 말씀으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겪었던 똑같은 유혹을 예수님도 모두 겪으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이러한 유혹은 우리가 세상에서 무언가 성취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유혹을 절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치에서 섬김의 훈련을 요하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가인에게 하셨던 창세기의 처음 두 질문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두 질문을 기억하며 서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도구로 준비되라.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서 마귀도 성경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말합니다. 시편 91편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성경을 아전인수로 이용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인용합니다. 결국 마귀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을 이용하는 셈입니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입니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논박합니다. 성전 꼭대기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영적인 길을 간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존재해 주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고, 도와야 합니다. 서로가 구원의 길을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재능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우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광야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광야에서 고독과 시련, 유혹의 과정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가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더라”라는 말씀은 이러한 마귀의 유혹이 얼마든지 어느 때고 다시 올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나는 지금 광야학교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예수님도 사역 전에 광야 학교를 통과하셨듯이 오늘 우리도 인생의 광야 학교를 통과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훈련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고독이 오고 있습니까? 주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인생의 시련이 오고 있습니까? 인내하는 믿음으로 견뎌내야 합니다. 육신의 유혹이 가까이 있습니까? 피하십시오. 하늘 문이 열리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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