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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니엘이 선포한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7. 2. 00:48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20130630]

     

    다니엘이 선포한 하나님(단 5:22~29)

     

     

    베르디의 오페라 <Nabucco>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가라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산과 언덕 위로 날아가라. 조국의 땅 위로 부는 바람은 부드럽고도 향내나는구나. 요단강의 푸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잃어버린 아름다운 조국이여,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1842년 3월 9일 밀라노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국민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나아가 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시편 137편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시 137:1-3)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니엘서의 전반부는 바벨론 포로기인 그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자녀들 가운데 왕궁에 불러들일 소년들을 준비시키라고 명합니다.

     

    이 때 뽑혀온 유다 자손 가운데 벨드사살로 이름이 고쳐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단 1:7). 다니엘의 신앙이 어떠한지는 왕궁 요리를 거부하는 사건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 결심하였습니다.

     

    이후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며 바벨론에서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갑니다. 이처럼 다니엘서는 포로 시대에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고 하는 다니엘의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고도 깨어있는 신앙이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만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신들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이 질문을 생각하며 이제 본문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본문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 왕에 부름을 받고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장면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담대하게 꿈을 해석합니다. 목숨을 건지려고 왕이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이야기하는 꿈 해석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선포하는 설교와도 같습니다.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적하는 모습도 연상됩니다(삼하 12장). 그러면 다니엘의 해석 속에서 증거 되는 진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22-23절)

     

    4장에 보면 선왕 느브갓네살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도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꿈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고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교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4장의 마지막은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 4:37)

     

    다니엘은 지금 벨사살 왕의 교만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이것을 다 알고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왕의 교만을 보고도 그 마음을 낮추지 않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알고도 불순종하였습니다(창 3:6). 다윗은 간음이 큰 죄인지 알면서도 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4). 그것이 죄인지 알고도 짓는 죄가 교만의 죄이고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계명을 알고도 고의로 짓는 죄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만을 싫어하십니다(잠 6:16). 교만한 자는 결국 멸망으로 끝납니다(잠 16:18). 회개하지 않는 것 또한 교만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행하신 일입니다. 높은 지위를 얻고, 많은 일을 할 기회를 주시고, 많은 재물을 맡기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할 때 교만은 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약 4:6).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을 갖고 회개하는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사 57:15). 다니엘이 지적한 벨사살의 교만을 거울 삼아 날마다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옷 입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골 3:12).

     

    두 번째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망하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23절에 보면 벨사살은 빼앗은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으로 잔치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신상들을 만들어 찬양하게 했습니다. 벨사살이 하나님의 성물을 자신의 유흥 도구로 삼은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행위입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이 행한 하나님 모독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막 3:29)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만연한 하나님 모독 죄도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악행들입니다.

     

    또한 벨사살은 금, 은. 구리, 쇠, 나무 그리고 돌로 만든 신상을 만들어 찬양하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은 사람이 만든 그런 신상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신 6:4).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는 계명을 제일 처음으로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섯 개의 신상들은 피조 세계의 불완전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람이 만든 신과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신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내가 신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른 신관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신관은 멸망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 가면 영생에 이릅니다. 다니엘처럼 올곧은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 영혼은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단 12:3).

     

    세 번째로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언행심사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손가락이 기록한 글자를 해석합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말에서 ‘메네’는 ‘세었다’는 뜻이고 ‘데겔’은 ‘달아보았다’라는 뜻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에서 세 단어는 모두 수동태입니다. 하나님이 ‘세어보시고 달아보셨다 그리고 나누셨다’라는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언행심사를 다 세어보시고,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다 알고계십니다. ‘메네’가 두 번 반복된 것은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심을 강조하시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니라.”(벧전 3:8-9)

     

    암브로시우스 교부는 ‘한 가지 일에는 한 가지 의지만 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법입니다(마 6:24). 당장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의를 버리고 남에게 보이는 신앙으로만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세어보시고 의도를 저울질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개 행하겠다’(민 14:2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생각도 계산하시고, 무심코 뱉은 말도 기억하시며, 모든 행동을 저울질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실패의 경험담만 쌓일 뿐입니다. 본문은 벨사살과 벨드사살(단 1:7)의 신앙을 대조하며 우리도 벨사살이 되지 말고 벨드사살이 되라는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심중을 세어보시고 언행을 저울질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말씀 앞에 나를 세우는 코람 데오의 인생이 되고(시 1:2), 나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착하고 충성된 인생(마 15:21)이 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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