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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신실한 파수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3. 9. 15:10

    사순절 첫째 주일(2014년 3월 9일)

    이사야 62장 6-9절

     

    하나님의 신실한 파수꾼

     

    제3이사야(56-66장)가 전하는 예언은 포로기 이후의 시대상에서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황무지가 된 고향 땅에서의 현실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사야는 돌아온 백성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다”고 희망을 선포하였습니다(사60:1).

     

    예언자는 절망 속에 있는 그들에게 시온의 회복을 약속하며 사명을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바라시며 유다 백성들에게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가. 하나님은 우리를 파수꾼으로 부르십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6절).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들을 ‘파수꾼’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본문에서 ‘내가... 파수꾼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세웠다’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 지명하시고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모세를 부르셨고,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실 때 우리는 망설이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출4:24).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시면서 먼저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였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지금도 하나님의 파수꾼을 찾고 부르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을 파수꾼으로 부르시며, 그들에게 ‘성벽 위에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벽은 도성과 성 밖의 경계선입니다. 즉 성벽은 도성을 지키는 최전선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최전방을 지키는 보초 한 사람이 뚫리면 성은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람의 방심으로 사탄이 침투하고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수7:25). 그만큼 파수꾼 한 사람의 책임이 막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우리 성도들을 이와 같은 파수꾼으로 부르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파수꾼인 나 한 사람의 안일과 태만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고, 교단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나. 파수꾼은 깨어서 쉬지 않고 외쳐야 합니다.

    “내가...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6절).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파수꾼으로 지명하여 부르시고,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사명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야로 계속’은 파수꾼의 깨어있는 정신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깨어 있지 못한 상태는 맹인 같은 상태요, 벙어리와도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라고 경고하였습니다(사56:10).

     

    바울은 우리를 빛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밤에 속하지 않았으니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라”고 권면하였습니다(살전5:5-6). 하나님이 성벽 위에 파수꾼을 배치하신다는 것은 그가 먼저 깨어있는 자가 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파수꾼은 단순히 눈만 뜨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사탄의 침투를 막을 수 있습니다(벧전5:8).

     

    또한 하나님이 파수꾼에게 주신 사명은 ‘잠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은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쉬지 말고 외치라는 뜻입니다. 파수꾼은 성 밖의 상황을 계속해서 정확하게 보고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거짓말을 섞어 가며 전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셔서 유다 백성을 깨우치게 하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렘7:9-10).

     

    바울도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고전14:8). 파수꾼에게는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알리는 예언자적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진리로 깨우치는 일입니다.

     

    이사야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아모스 등이 그런 삶을 살았고,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일이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사명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죄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명확히 외쳐야 합니다.

     

    다. 신실한 파수꾼이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7절).

     

    하나님이 파수꾼에게 맡기신 사명은 쉬지 않고 깨어있는 것이며, 백성들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본문은 파수꾼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 곧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파수꾼도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의미는 우리가 일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지 않으신다는 인간적인 give-and-take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논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셨을 때는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부른 것이고, 하나님은 사명을 다하는 그 사람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으로 진격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수1:2). 사명을 주신 후 하나님은 물러서신 분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그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셨습니다(수1:5). 다시 말해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는 내가 일할 때 하나님도 도우신다는 교훈입니다. 나는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대신 일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믿었으니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 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도 모르시고, 우리를 돌보지도 않으신다고 항의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힘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다”고 하시며 “너희가 나를 앙망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사40:27-31).

     

    여기서 ‘앙망하다’는 ‘서로 묶는다’는 의미에 나온 말입니다. 우리의 힘은 한두 가닥의 실과 같지만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도 도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그 실들이 서로 묶여 밧줄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 줄이 밧줄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파수꾼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기도하며 맡겨진 사명을 준수해야 하는 것입니다(마6:10).

     

    예수님이 왜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까? 온 인류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스로 낮아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발적 고난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눅6:12). 이는 예수님이 자신의 간구를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밤새 하나님의 기도 가운데 머무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파수꾼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파수꾼의 최고 모범이 되십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과 같은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세상과 타락한 교회의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하나님께 알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깨우고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가 이런 하나님의 신실한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쉬지 않으면 하나님도 쉬지 않으십니다. 신실한 파수꾼은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라. 신실한 파수꾼은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8-9절).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팔로 맹세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보다 더 높은 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인으로 맹세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보증이 담겨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도 일하시고 그 결과로 시온의 의가 빛나고, 예루살렘 구원이 빛처럼 증거 된다는 뜻입니다(사62:1). 하나님이 일하시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는 신실한 파수꾼을 하나님이 도우시는 결과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찬송하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시인은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시128:1-2).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는 삶이 복되고 형통한 삶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충성된 파수꾼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주어진 사명에 신실하게 응답하면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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