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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상을 잘하는 사람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합니다.
    성경적 구원의 길 2008. 1. 5. 02:39




    묵상을 잘하는 사람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묵상과 심리 치료를 병행해서-



    Jack Kornfield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명상의 훈련만이 전부는 아니다. 명상 훈련은 기껏해야 열림(opening)과 깨달음(awakening)을 주는 다양한 방법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다음과 같이 믿곤 했었다. 명상은 좀 더 높고, 좀 더 우주적인 진리들로 이끌고, 심리학이나 인격, 우리 자신의 “작은 세계들(little dramas)”은 각각 별개이고, 낮은 영역에 속해 있다고 믿곤 했다. 나는 명상이 좀 더 높고, 좀 더 우주적인 진리들로 이끌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중적이지 않은 실재의 본성(nature of reality)은 그것을 확증하지 못했다. 우리가 만약 고통을 종식시키고, 자유를 찾는다면 이러한 우리 삶의 분리된 두 단계를 가질 수 없다.

    우리의 마음과 몸의 다양한 영역들(compartments)은 단지 인식의 반투성(半透性, semipermeable)이다. 어떠한 현상들에 대한 깨달음은 자동적으로 다른 현상들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깊은 두려움을 느낄 때나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 명상가(meditator)들을 찾게 되는데, 그들은 완전하게 감정들을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호흡과 몸에 대한 깊은 통찰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찾게 되는데, 그들은 몸과의 관계는 잘 모를지라도 마음은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집중(mindfulness)하는 일은 우리가 우리의 고통 받는 모든 부분에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일 때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인 내력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크고 고통스러운 우리 자신의 “짐들(blocks)”로부터 진정 자유스럽기 위해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를 배워야하는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치료 작업은 종종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치료요법(therapeutic relationship)으로 잘 되어져왔다.

    묵상(meditation)과 영성훈련(spiritual practice)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고 또는 우리 삶의 힘든 부분들로부터 도피하는 일을 쉽게 행하곤 했었다. 우리의 슬픔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자신들의 고통의 원인을 참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에 대한 경험, 개인적인 이력, 우리 자신의 한계 안에는 많은 고통이 있다. 이것은 앉아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보편적인 고통을 대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다. 우리는 그 개인들과 그들의 슬픔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실력으로 다루어야 하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하는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전체를 보아야 하며,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어디서 나는 깨어나야 하며,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 내 실력을 감추어서 사용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부분을 인식하고 있으며, 어디에서 나는 두려워하고, 사로잡혀서, 자유롭지 못한가?”

    성장에는 많은 영역들이 있다. (슬픔, 끝나지 않은 다른 일들, 의사소통, 대인관계의 성숙, 성행위와 애정표현, 경력과 직장 문제, 어떤 두려움들과 공포들, 초창기의 상처들, 등등) 이러한 성장 영역에서 좋은 서양의 치료법은 대체적으로 묵상보다 좀 더 빠르고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우리 존재의 중요한 양상들은 “인격과 관계된 것(personality stuff)”이라며 글로 쓰여질 수가 없었다.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자신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일하는 것을 돕기 원한다고 했다. 만일 우리가 좋은 사랑을 못하고,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성훈련이 무엇을 위한 것이 되겠는가? 묵상(meditation)은 이러한 영역들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잠시 생각을 해본다면, 자신이 아직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좋은 치료사를 발견하거나 또는 이러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평범한 치료사들과 한계를 지닌 치료법들은 많이 있다. 묵상을 통해 최선의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새로운 치료법들이 강한 영성적인 기초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요법(Psychosynthesis), Reichian Breath Work, Sand Play, 영성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ies) 등이 그것이다. 최선의 묵상훈련과 같은 최고의 치료법은 깨달음(awareness)으로 마음을 치유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과거(our stories)와 관계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두려움(fear)이나 집착(attachment)에서 해방(release)되는 것, 망상(delusion)이나 소유욕(grasping), 불필요한 고통(unnecessary suffering)의 영역으로부터 집중을 가져오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다. 누구나 영성심리학의 방법들을 통해 가장 깊은 자기 비움(selflessness)의 실현이나 집착에서 멀어지는 것(non-attachment)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묵상(meditation)이 심리치료(psychotherapy)로 대체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치료법은 결코 해결방법이 아니다. 의식(consciousness)이 중요한 것이다! 의식은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만약 당신이 자유를 찾는다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훈련은 항상 주기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내적인 시간들은 침묵이 필요할 때 있는 것이며, 우리의 삶과 침묵의 실현을 통합하는 외적인 시간들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성 치료를 돕는 시간도 뒤따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훈련의 중요한 현상들이다. 이것은 의심 없이 첫 번째 자아 발전과정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간다. 어떠한 훈련 단계에서건 선정(禪定, samadhi), 침묵(stillness)은 포함되며, 상처를 경험하는 것과 가족의 과거를 경험하는 새로운 단계들이 뒤따른다.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큰 경험이 뒤따르며, 무(void)의 경험이 뒤따른다. 그리고 더 많은 개인적인 문제들이 뒤따른다. 이러한 모든 단계들이 영성훈련의 상황 안에서 되어지는 것이 가능하다.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자신감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 우리가 추구하는 깊은 치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요약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을 포함하는 훈련의 관념을 넓혀야만 한다. 마치 선(禪)을 하며 소를 모는 그림처럼, 영적인 여정은 우리를 깊은 숲 속으로 인도하며, 다시 시장 터로 데려가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가 동정(compassion)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확실한 마음의 해방(heart's release)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  Jack Kornfield의 소논문 "
    Even the Best Meditators Have Old Wounds to Heal: Combining Meditation and Psychotherapy"를 번역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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