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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3. 25. 22:42

    사순절 다섯째 주일[2012032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요 3:1-7)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 영적 여정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이고 고난주간으로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사순시기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주님과 함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길 소망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롬 11:36)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성경적 구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달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나아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오늘 거듭남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분명 거듭나야 구원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거듭남이라는 주제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이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라고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이 시간 저는 먼저 왜 우리가 거듭나야만 하는 지를 말씀드리고, 이어서 거듭남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찾아오는 상황과 조건 속에 그런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맞습니다.(요 3:2) 하지만 저는 오늘 니고데모라는 사람의 진리 추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니고데모의 신분은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예수님보다 훨씬 높습니다. 본문 1절에서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율법대로 살려고 하는 바리새인이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미루어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교단의 지도자 또는 신학교 교수 정도 된다고 하겠습니다.(요 3:10)

    우리는 예수님께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을 니고데모가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니고데모의 영적인 수준을 낮은 차원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는 영적으로 높은 수준의 구도자입니다. 왜냐면 그는 진리를 구하는 자였고, 진리가 무엇인지 대답해 줄 상대를 제대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적, 문화적 상황으로 니고데모의 지위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더 배울 것이 있다거나, 심지어 회개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눅 7:30)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예수님을 만나러 온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입니다. 보통은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없고 병들고 죄인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이도 예수님 보다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신분, 지위, 학식, 경험, 나이를 떠나 예수님에게서 보통 사람이 아닌 무언가 신적인 존재를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본문 2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문제는 니고데모가 예수에게서 신적 계시가 있음을 주목한 것은 잘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던 방식처럼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적을 보고 주목하였다는 점입니다.(요 2:23) 우리는 사순절을 시작하며 신앙생활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오늘 본문도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귀한 본문입니다.

    첫 번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왜 거듭나야만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그 누구에게도 직접 가르치지 않았던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을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였고, 유대인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니고데모가 알고 싶었던 것이 예수님이 나타내 보이신 표징들을 보고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그 능력의 비결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생각과 의도를 아시도 단도직입적으로 신앙의 핵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표적 자체를 보지 말고 표적이 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뜻은 외적인 힘을 보지 말고 사람의 내면을 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곧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라는 소유가 문제가 아니라 실체가 무엇이냐 라는 존재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고,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지로 평가 기준을 삼습니다. 이 세상을 살 때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돈이 너무 없을 때는 사람이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니고데모도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외적 신분과 소유 그런 것들과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그 사람의 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됨으로 결정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로, 거듭남이란 과연 무엇인지, 거듭남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셨다고 했는데 사실 문맥상 니고데모가 무슨 질문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간파하시고 그에게 영적인 차원을 열어주시고자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정복자’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정복은 힘과 권력, 학식, 돈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의 정복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변화에 달려있다고 예수님은 엄청난 선포를 하십니다.

    사실 유대인에게 ‘거듭난다’는 말은 생소하게 들리는 표현입니다. ‘거듭난다’는 말 ‘아노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부터’이고 또 하나는 ‘두 번째’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우리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처음 들었다면 분명 오해하였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위로부터’가 아닌 ‘두 번째’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께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 니고데모는 ‘아노텐’을 사람이 두 번 태어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고 또 한 번 태어날 수 있냐고 반문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거듭난다는 것은 인간이 죽었다가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에 의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탄생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전적으로 타자가 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거듭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남은 결국 구원의 문제인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죄 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간이(시 51:5) 죽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롬 6:23) 천사와 인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차이는 천사는 영적인 존재인데, 인간은 영과 육이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롬 5:12)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는데,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절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육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육으로 났지만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방법으로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물 세례, 성령 세례를 말합니다. 물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막 1:4, 눅 3:3), 성령 세례는 성령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행 1:5) 세례 요한이 베푼 물 세례는 회개한 자에게만 베푼 세례입니다.(마 3:6) 그리고 성령 세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막 10:27)

    따라서 거듭남의 문제는 내가 거듭나고 싶다고 거듭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듭남의 소망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을 위해 인간적으로 해야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인간적으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곧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의 ‘영접한다’는 말씀도 ‘거듭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구절 요한복음 1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어떻게 하면 거듭나게 되는 지를 말씀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스가랴 4장 6절도 같은 의미의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순절기의 반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우리 안의 타락한 본성을 바라보며 타락한 죄성을 회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육체를 그 정욕과 탐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갈 5:24) 우리는 존재됨의 변화에 관심 갖지 않았던 모든 욕망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으로 변화되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거듭난 우리의 영혼 안에 역사하시어 세상적, 정욕적, 악마적인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며,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요일 5:4)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갈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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