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나님의 기준으로 탑을 쌓아야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2. 2. 22:07

    주현절 후 넷째 주일(2014년 2월 2일)

    창세기 11장 1-9절

     

    하나님의 기준으로 탑을 쌓아야 합니다.

     

     

    주전 605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등장하면서 바벨론은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앗시리아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고, 주변국 정복에 나서면서 남으로는 페르시아 만에서, 북으로는 아르메니아, 서로는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확장하였습니다.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네부카드네자르는 바벨론 도시를 세상의 중심으로 알리려 했고, 그 상징물로 아버지 나보폴라사르 왕 때 건축하다 중단된 신전탑을 다시 세워 완공하였습니다. 이것이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이 주는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가. 무엇이든 공적만 쌓으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3-4절).

    본문 3절에서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날 땅에는 돌이 없는 대신 유프라테스 강 주변의 질 좋은 진흙이 많았습니다. 성경은 함의 자손 가운데 니므롯이 이곳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습니다(창10:10). 그들은 진흙을 구워 흙벽돌을 만들고, 역청 우물에서 나는 역청을 활용해 높은 건물을 세웠습니다.

     

    바벨탑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91.2미터나 되고 7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맨꼭대기에는 마르둑이 거주하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에테멘앙키’로 불렀습니다. 이를 아카드어로 발음하면 ‘바빌루’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바벨론 제국의 문명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경험하며 여호와 신앙의 눈으로 바벨탑을 해석하였습니다. 4절에서 바벨론 사람들은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문학, 수학, 천문학, 도자기 기술 등은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문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의 위치까지 오르려고 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류 문명을 인류 공존과 사랑의 가치로 소화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을 신의 위치로 오를 수 있도록 부추기는 위험한 도구가 되고 맙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은 나름의 공적을 쌓으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심판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고전3:13). 열심히 공만 들이면 다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빗대어 실상은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자기신격화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 자기 이름을 세우려는 목적의 공든 탑은 결국 무너집니다(7-8절).

    바벨탑을 세우는데 쓰인 흙벽돌은 가로, 세로 각각 30센티미터, 높이 8센티미터 규격으로 만들어져서, 적게는 3,600만개에서 많게는 7,500만개 정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맨 위의 신전은 아프카니스탄 등지에서 나는 짙푸른 색을 띤 청금석 타일로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닿을 듯 한 높이로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던 바벨론의 상징도 주전 482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늘 높이 올라가던 바벨탑과 도시 건설의 중단을 하나님의 개입으로 해석합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7-8절). 아무리 공든 탑이라도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탑은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이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발명은 자멸하고 맙니다. 아무리 많은 추종자를 불러 모은 이론과 교리라도 하나님을 아는 일을 가로막는 체계는 파괴되고 맙니다(고후10:4).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돈 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쌓았지만 자기만족, 자기성공, 자기신격화를 위한 공든 탑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하나님의 대적은 결국 망합니다(수6:20).

     

    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탑을 쌓아야 합니다(5-6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라고 하였습니다(5절).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십니다(시33:1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십니다(시7:9).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 구분 없이 모두를 살피시고 계십니다(잠13:3).

     

    우리는 불의를 행하고도 승승장구하는 악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혹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이 오래 가지 못함을 증언합니다. 악인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시1:5).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의인의 길에 들어서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살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생의 탑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세상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지혜로 세우면 그 탑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마7:25).

     

    라. 하나님을 높이는 인생은 하나님이 다시 부르십니다(1-2, 9절).

    1절에서 “온 세상에 언어와 말이 하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는 ‘통일된’이라는 말이 아니라 ‘한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바벨탑 사건 이전까지 인류의 언어가 통일되었고, 그 이후 사람들이 흩어짐으로 언어가 나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대홍수 후 노아의 아들들은 흩어져 살았고 각기 나뉘어져서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창10:5).

     

    이 세상에 언어가 한 가지라는 의미는 원래 하나님과 소통하는 언어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같은 말을 하며 교통합니다. 양심이 깨끗하면 누구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롬13:5).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고, 세력을 모아 사람의 제국을 건설하려고 하면 하나님과의 소통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사라진 모습이 2절에 나타납니다.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류하다’는 말로 쓰인 ‘야사브’는 ‘정착하다, 거주하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에는 이렇게 정착하려는 사람들과 ‘잠시 머물다 떠나는’(구르) 나그네 같은 사람들이 대조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창23:4). 야곱도 라반의 집에 잠시 몸붙여 살았던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창32:4).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자기 성을 세우며, 탐심으로 사는 인생의 결말이 바벨입니다(9절). 바벨의 뜻인 ‘혼돈’은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가정이 불화하고, 교회가 불통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떠난 모습이고, 이미 심판 받은 것입니다(요3:18). 그러기에 하나님을 떠나면 바벨 인생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면 임마누엘 인생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할 인생인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나그네로 왔다 다시 돌아가야 할 인생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위해 힘 써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부름 받은 자녀들에게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했습니다(벧전1:17).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나그네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늘의 소망을 두며 사는 인생은 하나님이 계신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Designed by Tistory.